유가족 “정부의 끔찍한 실수” 반발
쿠바에 있는 미군 관타나모 기지에 수감중인 9·11동시테러 용의자들이 뉴욕의 민간법정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 이에 따라 버락 오바마 정부의 관타나모 기지 폐쇄 방침도 본격 시행단계에 올랐다.
에릭 홀더 미 법무장관은 13일, 9·11 테러의 핵심 용의자인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를 비롯해 5명의 테러 용의자들이 뉴욕으로 이송돼 연방법원에서 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홀더 장관은 “(9·11 테러 발생 이후) 8년 동안 지체된 끝에, 테러공격에 책임을 져야 할 용의자들이 마침내 법의 심판에 서게 될 것”이라며 “사법당국은 이들에게 사형을 포함한 최고형을 구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이들에 대한 재판 개시일은 밝히지 않았다. 재판이 진행될 뉴욕 남부지구 법원은 9·11 테러 당시 납치된 여객기 2대의 연쇄충돌로 무너져내린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있던 자리인 ‘그라운드 제로’에서 불과 몇블록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아시아 순방차 이날 일본을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법무부의 발표는 법 집행의 문제이자 국가안보에 관한 결정”이라며 “용의자들이 가장 엄정한 정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9·11 테러용의자들을 미국 본토의 민간법정에 세우는 것은 오바마가 공약한 관타나모 기지 폐쇄 방침의 중요한 수순이자, 오바마식 테러리즘 대처법에 대한 법적·정치적 시험이기도 하다. 재판과정에서는 수감자들에 대한 물고문 같은 가혹한 심문기법으로 얻어진 증거들에 대한 심각한 법적 의문도 제기될 전망이다.
미국 해안경비대학의 글렌 설머시 교수(법학)는 <에이피>(AP) 통신에 “이런 결정은 우리가 알카에다와의 전쟁에 어떤 식으로 접근할 것인가에 대한 완전한 지각변동”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에릭 홀더 법무장관은 이날 발표에서, 가혹한 심문기법이 동원됐다는 사실 자체가 성공적인 재판 결과를 도출하는 데 방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이틀째인 지난 1월22일, 1년 내 관타나모 기지 폐쇄와 고문 금지를 지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그러나 실제로 내년 1월22일까지 관타나모 수용소를 폐쇄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공화당 의원들과 보수파들의 반대가 심한데다, 215명에 이르는 관타나모 수감자들을 이감할 마땅한 장소를 구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9·11테러 희생자 유가족들도 미국 정부의 방침에 반대하고 나섰다. ‘안전한 미국 건설을 위한 9·11 가족들’의 회원인 에드 코왈스키는 13일 <아에프페>(AFP) 통신에 “테러리스트들에게 미국 헌법의 보호를 받을 기회를 허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일 뿐 아니라 전례도 없다”며 “(정부의 방침을) 끔찍한 실수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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