딕 체니 전 부통령(왼쪽), 오바마 대통령(오른쪽).
오바마 “안보 해치는 부당한 조처”…관타나모 폐쇄 재확인
체니 “테러 전쟁에 중간지대 없어, 위험에 빠뜨리는 것” 비판
체니 “테러 전쟁에 중간지대 없어, 위험에 빠뜨리는 것” 비판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딕 체니 전 부통령이 21일 전 정부와 현 정부의 국가안보정책을 놓고 대선토론을 방불케 하는 뜨거운 설전을 벌였다.
관타나모 폐쇄와 관련해 좌우 양 진영의 비판을 받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지난 7년간 관타나모에서 벌어진 일들은 미국의 안보를 강화하기보다는 해치는 부당한 특별조처”라며 내년 1월까지 관타나모를 폐쇄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겠다고 재확인했다. 그는 미국 헌법과 독립선언서가 보관된 국립문서보관소를 연설 장소로 택해 “법치의 회복이 미국의 적들을 패퇴시키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며 자신의 조처는 부시 행정부가 법적 혼란 상황에 남겨놓은 관타나모 수감자들에 대한 합법적 틀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에이피>(AP) 통신은 오바마가 법학자의 모습으로 돌아가, 안보 문제를 공격하는 우파와 미국의 정의를 회복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좌파 사이에서 중도의 자리를 찾으려 했다고 평했다.
최근 국가안보 문제를 무기로 ‘오바마 저격수’를 자임한 체니 전 부통령은 이날 보수 성향의 미국경제연구소(AEI)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을 지켜본 뒤 연설을 시작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의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 결정, 중앙정보국(CIA)의 테러용의자 심문 관련 문서 공개 등은 미국의 안보를 위험에 빠뜨리는 조처라고 비난했다. 그는 “테러와의 전쟁에 중간지대는 없다”며 “수용소 폐쇄 결정이 유럽에서는 박수 갈채를 받을지 모르지만, 사법부의 이해와 미국의 국가 안보에 도움이 되는 대안을 찾아내는 것은 미묘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미국 언론들이 ‘거인들의 충돌’이라고 이름 붙인 이날 설전은 부시 전 행정부를 대표한 체니 전 부통령의 네오콘적 세계관과 새 행정부 국가안보 전략의 대충돌이었다. 전 부통령이 현 대통령을 직접적으로 공격하고, 현 대통령이 대응에 나서는 일은 미국 역사에서 전례없는 일이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의 이날 연설은 관타나모 수감자 처리에 대한 분명한 대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또, 지난 대선기간 동안 밝혔던 공약과는 달리 일부 수감자들에 대한 부시 행정부식의 군사재판을 인정하고, 일부 위험한 수감자들을 재판없이 무기한 수감하겠다고 밝혀 진보 진영으로부터도 공감을 얻지 못했다. 모처럼 반격의 기회를 잡은 공화당 쪽은 이번 설전을 계기로 오바마 정부에 대한 공세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정부가 안보논쟁에서 물러서게 된다면, 경제회복과 의료보험 등 개혁 추진에도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워싱턴/류재훈 특파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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