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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보이콧·퇴장…‘인종차별철폐회의’ 파행

등록 2009-04-20 19:35수정 2009-04-21 01:04

스위스 제네바 유엔본부에서 20일 개막된 유엔인종차별철폐회의에 참석한 서방 국가 외교관들이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인종주의 체제라고 비난하자, 회의장에서 퇴장하기 위해 일어서고 있다. 제네바/AP 연합
스위스 제네바 유엔본부에서 20일 개막된 유엔인종차별철폐회의에 참석한 서방 국가 외교관들이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인종주의 체제라고 비난하자, 회의장에서 퇴장하기 위해 일어서고 있다. 제네바/AP 연합
오바마는 8년전 부시처럼 불참
이란 대표 ‘이스라엘 비판’ 연설에
프랑스 등 유럽국도 회의장 떠나
스위스 제네바에서 20일 개막한 제2차 유엔 세계인종차별철폐회의가 이스라엘을 둘러싼 논란으로 유럽 국가 대표단들이 퇴장을 하는 등 파행을 겪었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이날 개막연설을 통해 중동에서 ‘인종주의 정부가 구성’됐다며 이스라엘을 지칭해 인종주의 정부라고 비난했다. 이에 프랑스 등 일부 유럽 국가의 대표단이 회의장에서 퇴장하는 등 잠시 소란이 일었다.

 아마디네자드는 “그들은 점령한 팔레스타인에서 인종주의 정부를 세우기 위해 유럽, 미국에서부터 이민자를 보냈다”며 “가장 잔인한 인종주의 정부”라고 이스라엘을 비난했다. 그는 또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2차대전 때 유대인 수난을 구실로 집 없는 사람들이 됐다며 “시오니스트와 그들의 동맹자들”이 이라크 전쟁을 기획했고, “세계의 시오니즘이 인종주의를 부추기고 있다”고 격렬히 비난했다.

 30여개국 2천여명이 참석해 닷새 일정으로 열리는 이번 회의는 개막 전부터 미국, 이스라엘,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네덜란드, 오스트레일리아 등이 보이콧하는 등 파행 조짐을 보였다. 반이스라엘 감정을 밝혀 온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이 개회연설을 하는 등 회의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책에 대한 이슬람권의 성토장이 될 것이란 이유에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9일 “미국이 회의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가 믿지 않는 가치들을 승인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고 말했다고 <뉴욕 타임스>가 전했다. 이스라엘은 항의의 뜻으로 스위스 주재 자국대사에 본국 소환령을 내렸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8년 전 첫 회의 때도 이스라엘을 인종차별국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아랍권의 주장에 반발해 중도 퇴장했다.

  유럽연합(EU) 주요국 가운데 영국과 프랑스는 이번 회의에 별도의 대표단 대신 스위스 주재 대사가 참석하기로 했다. 프랑스 등은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이스라엘 비난 발언을 할 경우 즉각 회의에서 빠지겠다고 경고했고, 실제로 아마디네자드가 이스라엘을 비난하자 집단 퇴장한 것이다.

 이번 회의는 2001년 남아공 더반에서 열렸던 제1차 회의 합의사항 진전을 중간평가하고 충실한 이행을 촉구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20일 “우리는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통합을 말하면서도, 나약하고 분열된 채 낡은 방식에 사로잡혀 있다”며 “더 나은 미래를 향한 길 다지기를 도와야 할 나라들이 이 자리에 없는 것은 깊은 실망이자 유감”이라고 꼬집었다. 앞서 19일에는 이번 회의를 총괄하는 나비 필레이 유엔 인권최고대표가 “불참한 몇몇 국가들이 한두 가지 문제를 전체 회의의 지배적 이슈로 삼아 인종차별 등 여러 불관용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우려보다 더 중시하고 있다”며 “충격과 실망”을 표시했다.

 인종차별철폐회의가 반이스라엘 성토장이란 일부 국가들의 주장은 과장된 면이 크다. 회의의 의제는 외국인 혐오, 양성평등 및 성적소수자, 성폭력 및 성착취, 노동자 권리, 빈곤, 장애인 등 차별과 관련된 거의 모든 문제를 아우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회의의 결의문 초안 143개 조항 가운데 이스라엘 또는 이슬람이 언급된 것은 “반유대주의·이슬람혐오주의·기독교혐오주의 등을 포함한 인종·종교적 불관용을 개탄한다”(제12항)는 내용이 유일하다. 또 2001년 1차 회의 최종선언문도 219개 조항 가운데 이스라엘·이슬람 관련 대목은 4개 조항 뿐이다. “반유대주의와 이슬람혐오주의를 우려”(61항)하며, “이에 맞서 싸울 필요성을 인정”(150항)하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 재개를 촉구”(151항)하는 내용이다.


 한편 아랍 국가들은 이슬람 등에 대한 ‘종교적 모욕’을 금지하는 구절을 최종 문안에 포함시킬 것을 여전히 요구하지만, 많은 서방 국가들은 이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로 여기고 있다고 <비비시>(BBC) 방송이 20일 보도했다. 서구와 이슬람권의 종교관 또는 문화적 시각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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