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류재훈 특파원
미래위협보단 ‘발등의 불’ 대처
“정규전이나 비정규전으로 범주를 나누는 것은 너무 인위적이다. 우리는 매우 정교한 탄도미사일로 타격할 수 있는 정부와, 그들의 지원을 받는 AK-47소총을 든 반군과 동시에 맞설 수도 있다. ”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은 최근 이 발언을 통해 새로운 ‘하이브리드 전쟁’(hybrid war)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가까운 미래에 재래식 전쟁인 정규전과 반군의 저항공격에 동시에 부딪칠 수 있다는 결론이다. 물론, 미군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치르고 있는 전투는 하이브리드 전쟁이라기보다는 반군만을 상대로 한 비정규전에 가깝다. 미군 전략가들이 상정한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란과 같은 “불량국가”와의 하이브리드 전쟁이다. 게이츠 장관이 지난 6일 발표한 2010년도 국방예산안은 이런 개념에서 출발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의 국방전략은 부시 전 행정부의 도널드 럼스펠드 전 국방장관이 첨단·미래전쟁을 염두에 두고 추진했던 국방개혁과는 궤를 달리할 것임을 예고한다. 먼 미래의 잠재적 위협보다는 현재 또는 임박한 위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이버전 전문요원이 증원되고, 이라크·아프간에 투입될 무인항공기와 헬기조종사, 특수전 요원 등을 확충한다. 게이츠 장관은 이번 예산이 비정규전 전력 10%, 재래식 전력 50%, 이중 목적 전력 40%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라크·아프간전에서 당장 필요한 과제에 대응하기보다 냉전적 사고에 집착해 비싼 프로그램에 국방비를 쏟아붓는 행태를 비판해 왔다. 미군이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해·공군 분야에서 불요불급한 예산은 축소됐다. 한대에 1억5천만달러나 하면서도 이라크·아프간 전투에 한번도 투입된 적이 없는 주력 전투기 F-22의 구매는 공군이 요구한 60대에서 4대로 줄이고, 더 저렴한 다목적기 F-35 구매 쪽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 그 단적인 예이다. 게이츠 장관의 이번 국방예산은 군산복합체의 강력한 로비 영향권에 있는 의회의 심의과정에서 상당한 도전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라크전을 뒤처리할 과도기 장관으로 여겨졌던 게이츠 장관이 내놓은 국방예산안은 그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고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평가했다. 게이츠 장관의 국방 예산은 오바마 행정부 국방정책 개혁의 시작이다. 내년으로 예정된 4개년 국방정책 검토보고서(QDR)의 발간과 함께 오바마 정부의 국방개혁은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류재훈 특파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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