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 책임’ 미 대통령 발언권 위축
자국 실수 인정등 부시와 다른 이미지
자국 실수 인정등 부시와 다른 이미지
국제외교 무대에 데뷔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스타였다. 그러나 그가 받아든 성적표에 A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뉴욕타임스>는 2일 “오바마의 스타성이 들쭉날쭉한 결과를 얻었다”고 낮게 평가했고, <에이피>(AP) 통신은 “일부 뒷걸음질이 있었지만, 잘된 정상회의”라며 그래도 후한 점수를 줬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오바마가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 동맹국보다는 과거 냉전시대의 적국인 러시아와 중국과의 정상회담에서 성과를 거뒀다”고 평했다.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는 “오바마의 스타성이 런던에서 빛을 발했다”며 외교적 성과보다는 그에게 쏠린 관심에 주목했다. 이런 ‘엇갈린’ 성적표는 그가 처음 서게 된 이번 정상회의의 성격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세계 경제위기의 해법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어서, 위기의 책임을 져야 할 미국 대통령의 발언권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일단 이번 정상회의를 통해 미국의 정책을 강요하는 ‘조지 부시식’ 일방주의 외교에서 벗어났다. 국제사회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미국의 실수도 인정할 줄 아는 새로운 미국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심는 데는 성공했다. 그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홍콩과 마카오를 포함한 세금도피처에 대한 규제를 놓고 첨예하게 설전을 주고받자, ‘변호사’ 솜씨를 살려 회의장 한쪽으로 두 정상을 불러모아 타협안을 이끌어내는 중재자 모습도 보여줬다. 각국 정상들은 회의 뒤 오바마 대통령의 겸손, 치열함, 진실성, 열린 자세 등을 입을 모아 칭찬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오바마가 전임자와는 “전혀 다르다”면서 “대화하기도 쉽고 남의 말을 경청할 줄 안다”고 호평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 자신은 이번 정상회의가 “글로벌 경제 회복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역사적 전환점”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만병통치약은 아니다”라며 조금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프랑스와 독일이 주장한 강력한 금융규제 장치를 조금 후퇴시킨 반면, 미국이 희망했던 세계적인 대규모 경기부양책 마련에는 실패했다.
그도 이번 회의를 큰 부담으로 느낀 것으로 보인다. 2일 기자회견에서는 특유의 달변으로 회견장을 가득 메운 각국 기자들의 우레같은 박수를 받았지만, 11시간이나 계속된 정상회의와 줄지은 개별 정상회담 등 빡빡한 일정 탓에 “일주일째 감기와 싸우고 있다”며 재채기와 기침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미국 언론들은 이번 정상회의에서 미국과 오바마 대통령이 거둔 성과의 한계는 그의 지친 모습과 표정에서 충분히 가늠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워싱턴/류재훈 특파원 hooni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