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도 백인도…연예인도 노숙자도
“역사적 순간을 텔레비전 앞에서 맞을 순 없었죠. ”
앨라배마주 셀마의 아프리칸 감리교회 클린턴 채플의 첫번째 흑인 여성목사 프랭키 허친슨(56)은 미국 제44대 대통령이 될 버락 오바마의 취임식을 보기 위해 두 딸과 손자들을 데리고 20일(현지시각) 워싱턴 내셔널몰로 갔다.
허친슨에겐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탄생이 지니는 의미는 각별하다. 그의 가족의 일생 자체가 흑인 민권운동의 산 역사이기 때문이라고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가 19일 보도했다. 그의 외할머니는 앨라배마주의 목화농장에서 노예로 보냈고, 어머니도 1962년 흑인 투표권을 요구하는 시위 도중 구속됐다. 그 역시도 백인들만 득시글한 학교에서 매일 ‘니거’(흑인을 비하해 부르는 말)란 놀림을 받으며 자랐다. 오바마의 취임은 그에겐 대단한 감격이며, 부모 세대가 고통받으며 이뤄낸 것들을 축하하는 시간인 동시에, 새로운 세대들이 맞게 될 기회를 보는 순간이다. 그는 오바마의 취임이 변화의 성과물이라며, “우리 가족에겐 매우 중요한 의미”라고 말했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 탄생을 비단 흑인들만 반기는 것은 아니다. 예고된 영하의 날씨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 두툼한 외투차림을 한 수백만명의 인파가 워싱턴으로 몰려들었다.
하루 벌어먹고 살기에도 벅차 대통령 취임식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던 이들에게도 모처럼 워싱턴행 기회가 주어졌다. 버지니아주의 사업가 얼 스태퍼드가 자신의 비영리 재단을 통해 160만달러를 모아 노숙자와 실직자, 저소득층 청소년 등 700명을 초청해 백악관 근처의 고급 호텔에서 취임 축하 행사를 열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보도했다. 이들은 천막이 처진 발코니에서 오바마의 취임식 행렬도 관람했다.
알코올 중독으로 넉 달 전까지만 해도 30년 동안 노숙자 신세였던 에밀리 밀러(50)는 이 행사에 참여하며 “상상도 못해 본 일이 일어났다”며 기뻐했다. 또 오스틴 헨더슨(16)은 이번 행사를 통해 시카고 남서부 잉글우드 밖으로 처음 나와봤다고 말했다. 어머니 사망 뒤 할머니 손에서 다른 6형제와 함께 자랐다는 그는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에 감명을 받았다며 “그의 발 자취를 따르면 언젠간 그처럼 되거나, 더 나은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바마의 취임식은 ‘별들의 잔치’이기도 했다. 소울 음악의 여왕으로 불리는 어리사 프랭클린이 취임식 축가를 부르고, 배우 톰 행크스와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초대손님으로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또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와 흑인 최초로 미국 대학농구팀을 우승으로 이끈 존 톰슨 감독, 전 헤비급 복싱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 등 스포츠 스타들도 대거 참석했다. 앞서 연예잡지 <피플>은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유명인이 모이는 취임식이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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