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뒤 사람들] ③ 블로그 연 미 실직 언론인
방문객 하루 6천명 하지만 여전히 백수
“한국 누리꾼들과도 실업고통 소통 원해”
방문객 하루 6천명 하지만 여전히 백수
“한국 누리꾼들과도 실업고통 소통 원해”
“실직자의 심정을 담은 블로그를 만든 뒤, 내 처지에 대한 분노와 좌절을 건설적 방향으로 돌릴 수 있게 됐다.”
‘빵을 위해 블로그를 합니다’(Will Blog 4 Food)라고 적은 손팻말을 든 채 샌프란시스코 거리에 선 두 남녀의 사진이 지난 9일 <로이터> 통신을 타고 세계에 전해졌다. 방송사 제작·편집자였던 존 헤니언(32·사진 오른쪽)과 방송기자로 일하던 타니아 케이더(29·왼쪽)였다. 두 사람 모두 경제위기로 한 달 전 일자리를 잃었고, 자신들의 관점으로 최근의 경제상황과 실직자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블로그(unemploymentality.com)를 알리려 거리로 나선 참이었다.
23일 <한겨레>와 주고받은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헤니언은 자신들이 여전히 ‘백수’ 신세라고 했다. 그는 “15곳에 이력서를 냈지만 아직 어디서도 면접하자는 연락을 못 받았다”고 밝혔다. 케이더의 처지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는 한푼이라도 벌 생각에 얼마 전 옷을 꺼내다 중고매장에 팔았다. 온갖 추억이 담긴 옷을 팔아 번 돈은 고작 26달러. “그래도 없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으로 씁쓸함을 달랬다.
헤니언은 실직 초기 자신을 실직자로 만든 현재의 경제상황에 분노했다. “실직자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일자리를 잃는 게 아니라, 마음에 큰 균열이 생긴다.” “왜 하필이면 나지?” 맥주잔에 머리를 박고 만취했던 며칠이 지난 뒤 그는 “이제 서서히 느슨해진 삶에 익숙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 상황의 피해자가 되는 대신 이 상황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결심이 선 뒤에 찾아온 여유다.
그의 기운을 되찾아 준 건 바로 블로그다. 인터넷 언론 <허핑턴 포스트>를 만든 아리아나 허핑턴이 케이블 방송에서 실직이나 주택 가압류의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블로그에 글을 써 보라고 권한 게 계기가 됐다. 구인 안내문을 뒤지다 지치면 블로그에 글을 썼다.
<로이터> 사진이 계기가 돼 실직자의 심정에 공감하는 전세계 누리꾼들이 이들의 블로그를 찾았다. 방문객은 하루 6천~9천명 이상이다. 지난주 미국의 신규 실업수당 청구자가 1982년 이후 최대인 58만6천여명에 이르고, 실업률이 6.7%까지 치솟은 취업난 속에서 이들의 블로그는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한 참여자는 수요일마다 ‘임시직의 일기’를 연재하기로 했고, 한 달 전 실직한 전직 방송 제작자는 ‘실직한 다음날 내게 재미나는 일이 생겼다’란 영상물을 만들어 보내기도 했다. 실직자들을 위해 매주 저예산으로 요리하는 법을 올려주겠다는 이들도 생겨났다.
전직 언론인들답게 실업 문제에 대한 자신들만의 보도도 할 생각이다. 케이더는 실직자들을 위한 생활 조언 시리즈를 준비하고 있고, 헤니언은 경영자들이 경기침체를 어떻게 극복하는지를 담은 취재를 준비하고 있다. 두 사람은 궁극적으로 “전세계 많은 이들이 참여해 지금의 경기침체 상황과 실직에 대한 독특한 시각을 제시하는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게 목적”이라고 말했다. 또 “실업으로 고통받는 많은 한국인 누리꾼들의 이야기도 함께 나누고 싶다”고 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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