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게이츠(사진)
미 현실주의 안보노선의 적자
이라크 철군 일정확정은 반대
이라크 철군 일정확정은 반대
“조지 부시 행정부의 임기가 끝난 뒤에도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생각해볼 수 없다”고 말했던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이 오바마 행정부에서도 자리를 지키게 됐다. 미국 역사상 다른 당 출신이 새로 대통령이 될 때, 기존 국방장관이 유임되는 것은 게이츠 장관이 처음이다.
미국 언론들은 25일(현지시각)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 정권인수위와 게이츠 장관 사이에 ‘적어도 1년 동안은 자리를 유지한다’는 협상이 끝났으며, 부장관 등 국방부 고위직 인사를 협의 중이라고 전했다. 1968년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 이래 처음으로 전시 중 정권을 이양받는 오바마는 게이츠 장관의 경험과 신망을 바탕으로 군의 동요를 막으면서 이라크전 조기 철군과 아프간전 증파 등의 공약 이행을 추진하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제위기 극복에 초점을 맞춰야 할 오바마로서는 국방에 관한 한 정권 이양 기간을 늘려잡은 것이다.
게이츠는 전후 미국 외교안보 노선의 주류인 현실주의의 충실한 적자이다. 오바마 당선자가 후보 시절 조언을 구했던 현실주의 대부 중의 하나인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전 안보보좌관 밑에서 게이츠는 부보좌관을 지냈다. 그는 네오콘 노선에 충실하다가 이라크전을 파탄낸 도널드 럼스펠드 전 장관의 후임으로 발탁됐다. 부시의 외교노선이 네오콘 노선에서 현실주의로 전환하자 아버지 부시 대통령 시절 중앙정보국장 등을 지낸 그가 선택된 것이다. 오바마 외교안보팀도 현실주의 노선을 채택한 이상 그를 유임시킴으로써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즉 공화당 쪽 인사인 그를 유임시킴으로써 오바마의 약속이었던 초당적 내각 구성도 충족시켰다는 것이다.
게이츠 장관은 이라크 철군 자체는 반대하지 않지만 일정을 확정하는 데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오바마 정부의 최우선 국가안보 현안인 아프간전에 대해선 2만여명의 추가 병력 파병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오바마 정부와의 융화가 그리 힘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최첨단 무기 획득 계획에 제동을 걸어왔다는 점에서 미사일방어(MD) 체제 정책의 변화를 예상하는 이들도 있다. 퇴임 시기가 정해진 레임덕 장관이라는 점에서 오바마 정부 내 위상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의 유임이 새 행정부의 대북한 정책에 큰 영향을 끼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럼스펠드 전 국방장관은 국무부가 중심이 된 대북한 대화 노선을 방해했지만, 게이츠 장관은 대북 정책에 적극 개입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워싱턴/류재훈 특파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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