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만삭스에서 잔뼈 굵어
클린턴 정부 때 재무장관
클린턴 정부 때 재무장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 행정부 경제팀의 막후 인물인 로버트 루빈(70) 전 재무장관에 대한 관심이 새삼 높아지고 있다.
루빈에게는 종종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월가맨’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루빈은 1966년 골드만삭스에 입사해, 국제시장에서 같은 상품이 가격차를 보이는 것을 이용해 수익을 추구하는 아비트리지(재정거래) 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기린아로 떠올랐다. 증권·채권 및 원자재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한 그는 90년 52살의 나이에 회장에 올랐다.
루빈은 골드만삭스 회장 시절 ‘아칸소 시골뜨기’였던 빌 클린턴 민주당 대통령 후보와 대화를 나눈 뒤 “잘 닦으면 대성할 인물”이라고 평하고, 그에게 월가와 글로벌 경제에 대한 마인드를 불어넣었다고 <뉴욕 타임스>가 전한 바 있다. 취임 뒤 클린턴 행정부는 루빈을 불러들였고, 즉시 월가의 지지와 신뢰를 얻었다.
93년 백악관 경제정책 보좌관이 된 루빈은, 클린턴 시절 처음 설치된 국가경제위원회(NEC)의 초대의장에 올라 경제정책을 지휘했다. 2년 뒤에는 미국 경제정책의 수장인 재무장관으로 취임해, 정보통신 산업의 벤처 붐을 동력으로 전후 최장의 미국 경제 호황기를 이끌었다. 루빈 사임 당시 클린턴 전 대통령은 “(초대 재무장관이었던) 알렉산더 해밀턴 이후 최고의 재무장관”이라고 극찬했다.
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 루빈은, 세계적 경제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한국의 ‘디폴트’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당시 그는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를 만나 대대적인 구조조정 약속을 받은 뒤, 각국에 전화를 걸어 한국에 대한 국제적 지원을 호소했다는 뒷이야기를 자서전에서 털어놓은 바 있다.
루빈은 최근 금융위기의 ‘원흉’이라는 비난을 사기도 한다. 규제를 거부하며 은행·증권·보험 간의 장벽을 허물어, 금융위기의 시발점이었던 대형 투자은행과 파생상품을 조장했다는 지적이다. 재정적자 해소를 위해 추진했던 증세 조처나, 아시아·남미 외환위기의 한 원인이 된 미국의 ‘강한 달러’ 정책도 그의 정책을 일컫는 이른바 ‘루비노믹스’의 한 단면이다. 오히려 규제가 필요한 현재 금융위기에서 루비노믹스는 효과가 없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공직 퇴임 뒤 월가로 돌아와 씨티그룹의 경영위원회를 이끌어온 루빈은, 정·재계를 거치며 구축한 막강한 영향력 탓에 이권 청탁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유대계로 민주당 각료를 역임했지만, 정치적으로는 중도 성향으로 분류된다. 도시와 빈민 문제 등에 대해 정부의 정책 강화를 주장하는 민주당과는 달리, 그는 민간 영역의 역할 확대를 강조해 왔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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