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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류재훈 특파원
특파원리포트
40년 전 좌절됐던 미국 정치의 이상이 현재진행형으로 바뀌고 있다.
최초의 미국 흑인 대통령을 꿈꾸는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7일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의 패배 인정으로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됐다.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이 암살된 지 만 40년이 되는 시점에 이뤄진 일이다. 로버트 케네디는 캘리포니아 예비선거 승리 집회 뒤 총탄을 맞고 이튿날 사망했다. 오바마는 또 8월28일 콜로라도 덴버 전당대회에서 후보 수락 연설을 할 예정이다. 이날은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가 링컨 메모리얼 앞에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I have a dream)라는 명연설을 남긴 지 45주년이 되는 날이다. 킹 목사는 68년 4월4일 암살당했다.
이런 역사적 ‘우연의 일치’는 오바마 대선후보 확정의 의미를 더해준다. 오바마의 등장은 로버트 케네디의 암살로 무너졌던 중도적 진보주의를 되살려내고 있다. 킹 목사가 연설할 당시 세살바기였던 오바마는 “피부색이 아닌 인격으로 평가받는 세상”을 향한 킹 목사의 염원을 실현시키고 있다. 46살의 초선 상원의원인 오바마는 여러 면에서 42살이던 로버트 케네디와 39살이던 킹 목사가 이루지 못한 꿈을 일깨운다.
단문으로 된 오바마의 연설은 킹 목사의 감동적이고 영감을 주는 설교를 연상시킨다. 민주당 최대의 정치가문인 클린턴가의 힐러리를 쓰러뜨린 오바마의 힘은 로버트 케네디의 희망을 재건하고, 그의 지지기반을 부활시킨 데서 비롯했다. 로버트 케네디 이후 오바마처럼 좌우·중도를 아우르는 후보는 없었다. 오바마의 ‘변화와 희망의 메시지’는 젊은층과 흑인들을 투표장과 유세장으로 불러모았고,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을 넓혔다. 오바마의 본선경쟁력은 여기에 있다. 오바마의 집회장에서 가장 많이 듣는 “예스 위 캔”(Yes, we can)이 로버트 케네디가 스페인어로 외쳤던 “시, 세 푸에데”(Si, se puede)라는 점도 단순한 우연만은 아니다.
오바마는 이번 선거가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선거라고 주장한다. 로비스트의 금권에 놀아나던 파당적인 워싱턴 정치의 개혁을 약속한다. 5개월을 끌어온 경선이 민주당의 분열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가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를 통해 민주당은 반세기 만에 가장 강력한 전국적 선거조직과 자금동원력을 갖추게 됐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상원의원끼리의 전례없는 대결로 압축된 11월 대선에서 오바마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단정하긴 힘들다. 미국 경제상황과 이라크전 등 전반적 분위기는 오바마에게 순풍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공화당의 이단아라는 명성을 쌓은 존 매케인 후보 또한 전통적 선거지형을 바꿀 만한 자질을 갖추고 있다. 두 후보 모두 중도적인 무당파의 지지를 두고 경쟁적 관계에 있다. 오바마는 실망한 공화당원들을 겨냥하고 있고, 매케인은 힐러리 지지층인 여성과 히스패닉, 백인노동자표에 눈독을 들인다.
그동안 민주당 대선후보들은 킹 목사와 로버트 케네디의 적자임을 내세웠지만, 그 꿈에 다가선 후보는 없었다. 오바마처럼 이들 집안의 전폭적 지지를 받아낸 후보도 없었다. 오바마가 40년전 암살된 두사람의 못다 이룬 꿈을 실현하기 위해선 역사적 우연이 다시 한번 필요하다. 미국 역사에서 상원의원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는 존 에프 케네디와 워렌 하딩 두 사람 뿐이었다. 둘은 모두 초선의원이었다.
워싱턴/류재훈 특파원
워싱턴/류재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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