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을 방문중인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15일 이스라엘 의회에서 이슬람주의 단체들의 극렬한 전술을 비난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예루살렘/AP 연합
“테러분자와의 협상은 나치 유화정책과 같아”
“이란·시리아 등과 대화” 주장해온 오바마쪽 강한 반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나치 유화정책’ 발언이 미국의 대선정국에서 한바탕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스라엘 건국 60돌 축하행사 참석차 이스라엘을 방문중인 부시 대통령은 15일 이스라엘 의회 연설에서 “1939년 나치가 폴란드를 침공하자 한 미국 상원의원이 ‘내가 히틀러와 대화할 수만 있다면 이 모든 일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며, “(이슬람의) 극단주의 테러분자들과 협상이 가능하다는 생각은 어리석은 망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태도를 “유화정책에 대한 잘못된 자기 위안”이라고 표현했다.
부시 대통령은 연설에서 특정인의 이름을 거명하지 않았으나, 미국 정가에선 이란·시리아와 같은 나라와도 대화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버락 오바마 민주당 상원의원에 대한 비난으로 해석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의 발언에 민주당은 벌집을 쑤셔놓은 듯 분개했다. 오바마 의원은 즉각 논평을 내어 부시 대통령의 주장을 “잘못된 정치적 공격”이라고 비판했다. 오바마 의원의 대선후보 경쟁자인 힐러리 클린턴 의원도 “민주당 의원을 나치 유화주의자에 빗댄 것은 도발적이고 무례한 폭언”이라고 비난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을 비롯한 민주당 중진 의원들도 “대통령의 품위에 못 미치는 태도”, “부주의하고 무책임한 발언” 등의 비난을 쏟아냈다. 아랍계 위송방송 <알자지라>는 “부시 대통령의 연설은 나치즘의 악몽을 자극함으로써 오바마 의원과 유대인 유권자들을 갈라놓기 위해 계산된 발언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사태가 커지자 백악관은 “부시 대통령의 발언은 오바마 의원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협애한 기독교 근본주의적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중동 분쟁의 핵심은 선과 악의 고전적 대결”이라며 “살인자들은 이슬람의 영성을 주장하지만 그들은 종교적 인간이 아니며, 하마스·헤즈볼라·이란은 어둠의 세력”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일간 <크리스찬사이언스모니터>는 “부시 대통령의 근시안적 연설은 이란·이라크·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해 유명세를 탔던 경직된 수사를 떠올린다”고 꼬집었다. 이 신문은 “그의 연설은 종교적 이미지로 가득 찼으며, 미국 대통령의 연설로는 전례 없이 미-이스라엘 관계를 신앙·이념적 색채로 묘사했다”는 정치분석가들의 논평을 덧붙였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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