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손모빌·지엠 등 피고…미 항소법원서 소송 심리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정책(아파르트헤이트)을 도운 다국적기업들이 미국 법정에 서게 됐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남아공의 피해자 단체가 50개 이상의 다국적기업을 상대로 미국 법원에 낸 4천억달러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계속 진행하도록 판결했다고 <로이터>통신이 12일 보도했다. 이 소송은 해당 기업과 미국 행정부의 반발, 대법관의 자격 문제 등으로 기각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쿨루마니지원단체(KSG) 등 3개 인권단체는 폭행·고문을 저지른 남아공 정부에 물적· 재정적으로 지원한 다국적기업들을 인권 위반 혐의로 2002년 미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1948년부터 94년까지 차별정책의 피해자들이 원고가 되었고 엑손모빌, 비피(BP), 시티그룹, 도이치방크, 아이비엠, 지엠, 포드 자동차, 후지츠, 제이피모건 등이 피고에 포함됐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의 판사 9명 가운데 4명이 피고인 다국적기업의 주식을 보유해, 재판을 맡을 자격이 안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정족수 6명 이상이 참여해야 법정 심리를 열 수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이날 사건을 2심인 뉴욕 항소법원으로 보내는 이례적인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뉴욕 항소법원에서 다시 심리가 열릴 수 있게 되었다. 뉴욕 항소법원의 판결 뒤 이 소송이 다시 연방대법원으로 상고돼도, 그때까지는 연방대법관들의 교체가 예상돼 최종심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조지 부시 행정부는 남아공 정부가 자국 안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미국 법원에서 심리하는 것은 주권침해라고 주장해왔고, 기업이 다른 나라에서 있었던 행위를 돕거나 방조했다는 이유로 책임을 지는 재판을 할 수 없다는 점 등을 들어, 이 소송에 반대했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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