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하면 고금리·적자심화 악순환”
‘경기냐, 물가냐!’
미국의 ‘경제 대통령’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딜레마에 빠졌다. 그린스펀 의장은 21일 미 상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기록적인 재정적자가 버티기 힘든 수준에 도달했다”며 눈덩이처럼 불어난 미국의 재정적자를 강도높게 경고하고 나섰다.
그는 “이런 추세를 역전시키지 않으면 미국 경제는 더 침체되거나 나빠질 것”이라며 “사회보장 및 의료비 등의 재정 지출 감축과 균형 예산을 위한 조처를 취해야 한다”고 의회에 촉구했다. 미국의 올해 재정적자는 전년의 4120억달러보다 많은 427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재정적자를 방치하면 고금리와 조달비용 상승, 재정적자 심화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린스펀은 지난달 하원 예산위원회에서도 “재정적자와 인플레 악순환 가능성”을 경고했다. 하지만 이날 뉴욕 증시에서는 그린스펀의 ‘경기침체 우려’가 ‘금리인상은 없다’는 신호로 해석되면서, 다우지수가 2년 만에 가장 큰 폭(2.06%)으로 올랐다.
뉴욕 증시는 이달 초 고용, 소매판매, 주택, 소비자신뢰지수 등의 경기 지표가 잇따라 예상치를 밑돌면서 소프트패치(경기회복기의 일시적 침체) 우려가 터져나오며 급락세를 탔다. 이날 발표된 3월 경기선행지수도 2년만에 최대 하락폭을 나타냈다. 동시에 3월 물가상승률(소비자물가지수)이 2년 반만에 최고 수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3% 이상 상승하는 등 인플레 압력도 그 어느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미 연준은 물가상승률 3%를 인플레의 기준선으로 삼고 있다.
이처럼 ‘물가상승 압력’과 ‘경기침체 우려’가 교차하면서 다음달 3일 예정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기준 금리를 어떤 수준에서 결정할지 주목된다. 연준은 지난해 6월 이후 7차례 열린 공개시장위원회에서 빠짐없이 0.25%씩 금리를 올려왔다. 그린스펀 의장은 의회에서 “현재 미국경제는 합리적인 속도로 팽창하고 있다”며 짧게 언급하고, 금리인상 등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클리브랜드 연방은행 총재는 이날 “연준은 무역 및 재정적자의 인플레 상승 효과를 억제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고 언급했다. 김회승 기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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