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토반환 조건 ‘10년간 전투 중단’…미국·이스라엘은 반응 냉랭
미국 대외정책의 금기에 도전해 중동 순방에 나섰던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21일 아흐레의 여정을 마쳤다.
이날 카터 전 대통령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대화 상대로 여기지 않는 하마스 지도자와 회담한 결과를 전하며 “하마스가 이스라엘과 이웃국가로 공존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고 <에이피>(AP) 통신 등 외신들이 전했다. 팔레스타인의 주요 정파인 하마스의 최고지도자 칼레드 마샬은 이날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 방안을 수용하고 10년 동안 이스라엘과 전투를 중단할 뜻이 있다고 밝히면서도, 이스라엘이 1967년 3차 중동전쟁(6일전쟁) 때 점령당한 영토를 반환하고 철수할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런 회담 결과에 대한 미국와 이스라엘의 반응은 냉랭하다. 미 국무부는 “하마스가 기존 태도를 바꾼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일축했다.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는 마지막까지 카터와의 만남을 거부했다.
카터 또한 하마스를 협상장으로 끌어들이는 데는 역부족임을 털어놓았다. 그는 하마스에 “보답을 기다리지말고 먼저 자비롭게 행동하면 국제사회의 믿음을 얻을 수 있다”며 무조건적 공격 중지를 제안했으나, 거부당했다. 그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으나 거절당했다. 하마스가 틀렸다고 생각한다”고 실망감을 나타냈다. 최창모 건국대 히브리중동학과 교수는 “카터 전 대통령이 대화만을 촉구하기보다, 경제봉쇄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가자 지구의 열악한 인권현실을 어떤 식으로든 국제사회에 보여주는 게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카터와 하마스의 회동 자체가 하마스를 배제하는 미국와 이스라엘의 정책에 대한 국제적 여론을 환기시키는 효과는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카터는 “하마스 배제로 평화협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대화 상대에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 이들과의 만남을 거부하는 것이 문제”라며 자신의 신념을 재확인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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