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 연예프로 ‘배우 레저 사망원인’ 방송예고에
“명예훼손·유족에 상처” 집단 항의…방영 취소시켜
“명예훼손·유족에 상처” 집단 항의…방영 취소시켜
‘선정 보도, 더 이상은 못참겠다!’
할리우드 스타들이 최근 숨진 영화배우 히스 레저의 마약 파티를 보도하려던 미국의 연예방송을 압박해, 끝내 방영 포기를 얻어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31일 보도했다. 할리우드 스타들이 공동 행동을 통해 선정적인 연예 프로그램을 저지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미국 <시비에스>(CBS) 방송의 연예프로 ‘엔터테인먼트 투나잇’(ET)과 ‘인사이더’는 30일, 영화 <브로크백마운틴>의 주연이었던 레저가 마약파티에 참가하고 있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다음날 공개하겠다는 예고편을 내보냈다. 2006년 1월 로스앤젤레스 샤토 마몬트 호텔에서 촬영된 이 동영상에는 레저가 코카인으로 보이는 물질을 흡입하는 사람들과 함께 등장한다. 레저가 “20년 동안 하루에 대마초 다섯대씩 피곤했다”고 말하는 장면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가 마약을 하는 모습은 나오지 않았다.
예고편이 나간 뒤, 레저의 홍보대행사 아이디피아르(IDPR)는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방송 철회를 요구했다. 이 회사는 아직 레저의 정확한 사망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데다 장례식도 치르지 않아, 이 동영상이 레저의 명예를 훼손하고 유족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며 항의했다. 하지만 방송국은 이 요구를 거절했다. 홍보사는 “이것은 저널리즘이 아니라 선정주의”라며, 연예기획·홍보사 등 30여곳에 방송 철회 압력을 호소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이 호소에 나탈리 포트먼과 사라 제시카 파커, 조시 브롤린, 엘렌 페이지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가세했다. 스타들까지 나서 방영 중단을 압박하자 방송프로 제작자들은 결국 백기를 들었다. 연예인들과 홍보대행사들이 중요한 취재 대상인 만큼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이디피아르의 켈리 부시 사장은 “(방송들은) 다르푸르 사태를 보도해야 할 때조차, 브리트니 스피어스나 패리스 힐튼의 사생활을 머릿기사로 다뤘다. 방송가와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조차 해도 너무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라고 비판하며 “이번 사건이 전환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할리우드 스타들의 이번 ‘쾌거’는 얼마전 국내 언론을 호통친 가수 나훈아씨의 기자회견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달 22일 뉴욕 맨해튼의 한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된 레저의 침대맡에선 약물이 발견되긴 했으나 불법적인 것은 아니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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