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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첫 원폭 투하 미 조종사 사망

등록 2007-11-02 19:14수정 2007-11-02 19:17

1945년 8월6일 미국령 마리아나제도 티니안에서 폴 티베츠 미 공군대령(당시)이 B-29 폭격기 조종석에 올라 이륙에 앞서 손을 흔들고 있다. 
자료/AFP 연합
1945년 8월6일 미국령 마리아나제도 티니안에서 폴 티베츠 미 공군대령(당시)이 B-29 폭격기 조종석에 올라 이륙에 앞서 손을 흔들고 있다. 자료/AFP 연합
폴 티베츠, 히로시마에 ‘리틀보이’…장례·묘비 거부
1945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탄과 함께 제2차 세계대전은 끝났다. 당시 히로시마에 처음으로 원자탄을 투하했던 폭격기 조종사 폴 티베츠(92·사진) 예비역 준장이 1일 미국 오하이오주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티베츠는 원폭 반대세력의 집회·시위를 염려해 장례식과 묘비 설치를 거부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그의 친구의 말을 따 보도했다.

1945년 8월6일 티베츠는 어머니의 이름을 딴 폭격기 ‘에놀라 게이’를 몰고 히로시마 상공으로 날아가 오전 8시15분에 원자폭탄 ‘리틀보이’를 투하했다. 당시 히로시마 원폭으로 7만여명이 현장에서 숨졌고, 주택 6만여채가 불탔다. 그 뒤 고열·방사능 등으로 숨진 이들의 숫자도 약 24만명에 이른다.

1915년 일리노이주에서 태어난 그는 37년 입대해 유럽의 폭격작전에 참가했으며, 66년 퇴역했다. 95년 워싱턴의 스미소니언 박물관이 주최한 원폭투하 50돌 전시회에서는, 원폭 피해상황에 초점이 맞춰진 것을 보고 “모욕적”이라며 맹비난했다.

티베츠는 다른 2명의 폭격기 탑승자들과 함께 2005년 원폭 60돌 기념식에 참석해 “원자폭탄의 사용은 역사적으로 필요했다. 우리는 후회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원자탄의 사용은 전쟁의 조기 종식을 가능케 했다”며 “추가적인 피해와 무고한 희생을 막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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