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값 폭등하자 신호등 전화선 닥치는대로 훔쳐
국가시설 정전사태…‘전선 자르지 말자’ 광고도
국가시설 정전사태…‘전선 자르지 말자’ 광고도
중미 카리브해의 도미니카공화국은 올해 288t의 구리를 국외로 수출했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 구리는 아직 채굴 준비 단계에 있을 뿐이다. 수출된 구리들은 대부분 도둑들이 전선과 전화선을 훔쳐 몰래 팔아치운 것이다.
전선과 전화선을 잘라낸 ‘구리 도둑’들의 극성맞은 ‘수출’ 탓에 이 나라의 산업기반(인프라)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9일 보도했다. 지난 5월 수도 산토도밍고에서는 구리전선 약 300m 가량이 도난당해, 시내는 물론 병원과 해군기지까지 모두 전력공급을 2시간동안 중단해야 했다.
원래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생산된 전력은 절반 가량이 시설 미비 등의 이유로 사라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나라에서는 병원들도 안정적이지 않은 발전기에 전력을 의존하며, 학교들은 전력 공급이 어렵다는 이유로 컴퓨터 기증마저 받지 않으려 한다. 국영 전력회사에 다니는 페드로 페나 루비오 영업이사는 “전선 도둑들의 창궐로 정전이 더 자주 일어나고 있다”며, “정부 당국은 당장 이런 짓을 못하도록 단속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몇년 동안의 구리가격 급등으로 생겨난 ‘인프라 도둑’들은 중남미에서 비단 도미니카공화국만의 일이 아니다. 최근 가이아나에서는 도둑들이 신호등 내부의 전선을 떼어가 교통에 큰 혼잡을 빚기도 했다. 가이아나 정부는 구리 수출을 전면 금지시켜 국내의 구리 도둑들이 훔친 물건을 외국 바이어에게 유통시킬 수 있는 길을 막아버렸다. 지난달 브라질에서는 축구 영웅 펠레의 동상에서 팔이 톱에 잘려나가 국민들에게 충격을 줬다. 자메이카 수도 킹스턴의 옛 역사에서는 철로와 전선을 떼어가기도 했다. 아이티는 텔레비전을 통해 “전선을 자르지 맙시다”라는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산토도밍고의 주민들은 종종 이웃사람이 전선을 어깨에 둘둘 감고 가는 장면을 목격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전선을 음식이나 마약 등과 바꾸는 한편, 고철상에 처분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멕시코 티후아나의 경제학자 콰우테목 칼데론 비야레알은 “세계화로 인해 이같은 현상이 번창할 수 있는 분위기가 돼버렸다”고 지적했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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