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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말문 닫히고 문화 낯설어 ‘나홀로’ 방황

등록 2007-04-18 20:57

성장통 심한 이민 1.5세대
이민 1.5세대인 아이들은 대개 자아가 완성되지 않은 시기에 이민을 가게 됨에 따라 성장하면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훨씬 많이 겪는다. 갑작스러운 언어와 문화의 단절은 그런 성장통을 더욱 키우는 요인이 된다.

생업 쫓기는 부모-적응 잘하는 2세대 사이 ‘소통 부재’
가족 갈등 감추는 한인 관습도 문제…“한국정부 지원을”

이들이 부딪치는 첫번째 장벽은 ‘언어’다. 고교 1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 간 지나 리(28·여)씨는 “똑같은 수학 문제를 푸는데도 영어로 된 지문을 보며 풀어야 하다보니 너무 어려웠다”며 “뒤처진 공부를 따라잡아야 하는 데다 고민을 나눌 친구가 없어 엄청난 스트레스를 겪었다”고 말했다. 또 이공희(23·여)씨는 “언어 문제로 힘들어 하다가 한국 출신들끼리 모이는 친구들을 여럿 봤는데, 점점 현지에 적응하지 못하게 되더라”고 전했다.

일단 말문이 트이면 한 고비는 넘긴 것이다. 그러나 이질적인 문화에서 오는 고립감은 쉽사리 줄어들지 않는다. 중학교 1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 간 대학생 이심(21·여)씨는 “처음에는 한국 문화를 잊어버릴 정도로 미국에 적응을 했었으나 대학교에 가니 다시 같은 인종끼리 모이게 된다”며 “언어문제나 문화문제를 나름대로 극복했지만 우리끼리만 공유할 수 있는 공감대는 따로 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미국으로 간 대학생 주한준(20)씨는 “심지어는 교포 중에서도 1.5세대와 2세대의 문화가 달라 웬만하면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뉴욕 공립초등학교 교사 윤정원(28)씨는 “어린 나이에 온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새로운 문화에 금방 익숙해지지만, 초등학교 고학년~고교생은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전했다.

부모들이 느끼는 맘 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두 딸을 둔 재미동포 한숙희(40)씨는 “당장 일하지 않고선 먹고 살 수가 없는데 아이 옆에만 붙어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근교 시장에서 상점을 하는 한씨는 오전 8시에 집을 나서 밤 9시나 돼야 집으로 돌아온다. 그는 “딸들과 대화다운 대화를 해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희미하다”고 했다.

고교생 아들을 둔 카니 정(47·로스앤젤레스)씨도 “아이들이 영어를 쓰게 되면서 말도 잘 안 통하게 되니까 ‘밥 먹어라, 자라, 공부해라’ 하는 말밖에 못하게 된다”며 “부모랑 말이 안 통하니 아이들이 자꾸 바깥으로 나도는 것 같다”고 걱정했다. 정씨는 “사춘기 때 방황하는 건 어디서나 마찬가지지만 미국에서는 총기랑 마약을 손쉽게 구할 수 있어 한시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민 가정들이 이런 고민을 터놓고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에는 주마다 주정부에서 운영하는 상담기관이 있고 학교마다 상담교사가 있지만, 한인 학부모나 청소년들의 이용률은 낮은 편이다.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한인회의 정영숙 회장은 “한인 부모들은 대개 문제가 생겨도 쉬쉬하며 가정에서 해결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문제가 생겨 학교에서 학부모를 부를 때야 마지못해 상담교사를 찾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이다.

미국 조지아주 한인회 박영석 회장은 “이민 가정의 문제를 풀기 위한 대책위를 꾸려 한인회 안에 정착시키자는 방안이 나왔지만, 인력과 재정 부족으로 힘에 부친다”며 “한국 정부에 지원을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민 컨설팅 업체인 남미이주공사의 이종오 이사는 “청소년기의 자녀를 동반해 이민을 갈 경우 이들이 달라진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문제가 될 수도 있으므로 경험자들의 조언을 반드시 들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정애 기자, 최원형 노현웅 수습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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