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비밀수용소 운영’ 정보 준 고위관리 해고
부시 색출지시 따른 조사에 걸려…“이중잣대”
부시 색출지시 따른 조사에 걸려…“이중잣대”
미 중앙정보국(CIA)은 21일 유럽에서 비밀 테러범수용소를 운영해온 사실을 <워싱턴포스트>에 흘린 고위관리를 해고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기밀정보 내용이 중앙정보국의 월권행위를 폭로하는 것인데다 <워싱턴포스트>가 이 기사로 올해 퓰리처상까지 받았기 때문에, 직원 해고가 정치적 보복이란 비판이 일고 있다.
중앙정보국 대변인은 “이 직원이 상부 승인 없이 언론과 접촉해 비밀정보를 누설했기 때문에 해고했다”고 밝혔다. 이 대변인은 해고 직원 이름을 밝히지 않았지만, <에이비(AP)통신> 등은 퇴직을 앞둔 메리 매카시(61)라고 전했다. 언론보도를 이유로 고위관리가 해고된 건 극히 드문 일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해 11월 중앙정보국이 동유럽 등에서 극비리에 테러범수용소를 운영해왔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이 보도는 주권침해와 인권유린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유럽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국가안보에 치명적 타격을 줬다며 누설자 색출을 직접 지시했고, 중앙정보국은 거짓말탐지기를 사용해 색출작업을 벌여왔다. 매카시는 거짓말탐지기에서 걸린 뒤 자신이 언론과 접촉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고 중앙정보국 관계자들이 전했다. <워싱턴포스트>의 이 기사는 국가권력의 비밀행위를 감시한 공로로 올해 퓰리처상 최고보도상을 탔다.
해고된 매카시는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고위보좌관으로 일했으며, 지금은 감찰실에 근무 중이다. 그는 1998년 클린턴 행정부가 수단의 한 공장을 화학무기 공장이라며 공격하려 하자, 대통령에게 직접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편지를 보낼 정도로 곧은 성격이라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정보누설 동기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매카시가 부시 행정부의 강경하고 초법적 행동들에 실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그를 아는 사람들은 밝혔다.
부시 대통령의 강력한 지시로 미 법무부는 지금 10여건의 언론 정보누설 행위를 수사 중이다. 그러나 최근 루이스 리비 전 부통령실 비서실장은 ‘리크게이트’ 법정 증언에서 “2004년 이라크 관련정보를 부시 대통령과 체니 부통령의 승인을 받아 언론에 흘렸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백악관이 자신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선 기밀정보를 흘리면서, 불법행위를 드러내는 정보 누설엔 가혹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워싱턴/박찬수 특파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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