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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페소화 ‘반토막’도 부족했나…나라 뒤집는 아르헨티나 대통령

등록 2023-12-28 15:44수정 2023-12-28 19:56

페소화 50% 평가절하 한 주 만에
경제·사법·입법 ‘입맛대로’ 급진 법안
아르헨티나의 반정부 시위대가 27일(현지시각)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경찰과 맞서고 있다. AP 연합뉴스
아르헨티나의 반정부 시위대가 27일(현지시각)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경찰과 맞서고 있다. AP 연합뉴스

극심한 경제 위기 속에서 취임한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각) 충격 요법을 담은 대규모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아르헨티나 대통령실은 이날 소셜 미디어를 통해 “밀레이 대통령이 자유 아르헨티나의 기반이자 출발이 될 법안들을 의회에 보냈다”고 밝혔다. 말레이 대통령이 지난 10일 취임 직후 자국 통화인 페소의 50% 평가절하, 에너지·교통보조금 삭감, 공공사업 축소, 과감한 규제 철폐 등이 포함된 ‘경제 비상조치’를 내놓은 지 한 주 만이다.

이번에 의회에 제출한 법안은 경제 비상조치의 후속 격으로, 세금과 사법체계, 선거제도, 정당 시스템 등 네 가지 정책 분야 664개 조항에 이른다. 대통령 비상조치로는 효력을 발휘할 수 없는 내용들이다.

밀레이 대통령은 이번 법안에서 △국내외 신고하지 않은 자산을 세금의 중과세 없이 등록하도록 허가하고 △기존의 비례대표제 의원 선거를 폐지하고 소선거구제를 도입하는 방안 등을 제안했다. 또한, △도로 교통을 방해하는 시위대에 더 엄격한 형벌을 내리고 △보안 관련 장관에 시위를 제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며 △세금과 연금, 에너지, 안보 등과 관련한 의회의 권한을 2025년까지 한시적으로 대통령에게 이양해 줄 것도 제안했다.

아르헨티나 상·하원은 내년 1월 31일까지 임시회의를 열어 이번 법률 개정안을 심의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밀레이 대통령실은 “선량한 국민들이 원하는 나라를 위해 함께 일할 것인지, 변화를 거부하고 방해하는 쪽에 남을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고 의회를 압박했다.

그러나 이들 법안이 의회를 통과할지는 미지수이다. 밀레이 대통령의 자유전진당은 하원 257석 가운데 40석, 상원 72석 가운데 7석을 확보하고 있을 뿐이다. 의회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있는 페론주의 정당 등 야당이 밀레이 대통령의 급진 자유주의 시장주의 경제 개혁에 손을 들어줄지는 불투명하다.

밀레이 대통령이 추진하는 급격한 변화는 거리에서부터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이날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거리에서는 전국단위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반정부 시위와 거리 행진이 이어졌다. 시위대는 “퇴행적인 개편은 자의적이며 위헌 요소가 많다”며 “수많은 국민의 생업을 잃게 하고 일상생활에 해를 끼치는 조처를 당장 거두라”고 외쳤다. 현지 언론들은 곳곳에서 밀레이 대통령의 과격한 조처에 반발하는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 충돌이 일어났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밀레이 대통령은 정면돌파를 다짐하고 있다. 밀레이 대통령은 전날 언론 인터뷰에서 의회가 개혁안에 찬성하지 않는다면 직접 국민투표에 부쳐 국민의 뜻을 묻겠다는 뜻을 밝혔다. 아르헨티나 헌법은 대통령이 중대한 사안에 대해 국민투표에 부칠 권한을 인정하고 있다. 국민투표 결과가 법적 구속력을 갖는 건 아니지만, 야당을 압박하는 효과는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정치자문기관 시놉시스의 루카스 로메로는 파이낸셜 타임스에 밀레이의 급진 개혁에 대해 “매우 대범한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문제는 그가 컨센서스를 형성해낼 것인지, 아니면 야당과 계속 충돌하고 갈등을 빚을 것인지에 달려 있다. 후자의 경우 정치적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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