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브래독에 있는 유에스(US)스틸 철강 공장. AP 연합뉴스
일본제철이 한때 세계 최대 철강 업체였던 유에스(US)스틸을 사기로 하자 미국 정치권에서 “안보 위협” 등을 이유로 반대 움직임이 일고 있다. 중국의 대미 투자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온 미국 정치권이 이번에는 일본 기업에 반발하는 특이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세계 4위 업체 일본제철은 27위 업체 유에스스틸을 141억달러(약 18조3천억원)에 인수하기로 했다고 19일 발표했다. 일본제철은 유에스스틸을 자회사로 두고 브랜드와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본사는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유에스스틸 주주들과 미국 규제 당국의 동의를 받아 내년 2분기 또는 3분기에 거래를 마무리하겠다고 했다.
미국 정치권에서는 민주당과 공화당을 가리지 않고 매각 중단을 요구가 나오고 있다. 공화당의 J.D. 밴스, 마르코 루비오, 조시 홀리 상원의원은 외국인투자위원회 위원장인 재닛 옐런 재무장관에게 보낸 서한에서 “분명히 외국(일본)에 충성하는 일본제철의 유에스스틸 인수를 막아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당의 조 맨친 상원의원도 성명을 내어 “우리를 초강대국으로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철강산업에 큰 타격이고 국가 안보에 대한 직접적 위협”이라고 주장했다. 유에스스틸 공장이 있는 펜실베이니아주 브래독 시장 출신인 같은 당 존 페터먼 상원의원은 “충격적” 거래를 중단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 정부와 정치권은 중국 기업의 미국 투자 등 중국 쪽과의 거래를 집중적으로 견제해왔다. 동시에 ‘프렌드 쇼어링’이라는 이름으로 한국과 일본 등 동맹국 기업들의 미국 투자 유치에 힘을 쏟고 있다.
하지만, 무기의 주재료인 철강은 안보와 관련이 깊다는 인식이 반발 배경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메이드 인 아메리카’를 강조하는 조 바이든 행정부는 철강은 안보 문제라고 주장하며 미국산 철강만 공공사업에 사용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주도한 ‘기반시설 투자와 일자리법’은 미국산 철강에 혜택을 주는데, 일본제철은 이 때문에 미국에서 유에스스틸의 판매량 증가가 예상되는 점도 인수 배경으로 꼽았다.
122년 역사를 지녔고 한때 세계 1위 업체로 산업 최강국 미국을 상징한 곳이 외국 기업 손에 넘어간다는 것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도 큰 것으로 보인다. 1989년에 일본 미쓰비시부동산이 미국 자본주의와 번영의 상징으로 꼽히던 뉴욕 록펠러센터를 매입하자 미국인들 사이에 큰 반감이 생겨난 것과 비슷하다.
미국 제조업과 미국 노동자들을 우선시한다는 바이든 대통령은 이런 반발이 곤혹스러울 것으로 보인다. 미국 철강노조는 일본제철이 유에스스틸을 저가품 중심 기업으로 만들면 노동자들 처우도 나빠진다며 정부 개입을 요구했다. 커린 잔피에어 백악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이에 대한 질문에 “규제 당국의 검토가 진행될 수 있는 특정 거래는 언급하지 않겠다”고만 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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