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8일 라스베이거스에서 연설하고 있다. 라스베이거스/AP 연합뉴스
유럽과 중동에서 진행 중인 ‘두 개의 전쟁’을 지원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은 야당,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은 진보의 반발에 부닥쳐 곤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두 전쟁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에 맞선다는 점에서 같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내년 11월 대선을 앞두고 좌우의 ‘협공’을 받아 지지율이 떨어지는 모양새다.
백악관은 10일 성명을 내어 바이든 대통령이 12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만난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는 것은 개전 뒤 벌써 세번째다. 백악관은 이 만남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미국의 “흔들림 없는 공약”이 강조될 것이라고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이번 미국 방문은 백악관이 연말이면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이 바닥난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는 등 매우 절박한 상태에서 이뤄진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500억달러)와 이스라엘(140억달러) 지원을 포함하는 1110억달러 규모의 ‘긴급 안보 예산’을 요청했지만, 지난 6일 상원에선 필리버스터를 생략하고 본안 표결로 가는 것에 공화당 의원들이 모두 반대해 가결이 불발됐다. 이달 23일이면 크리스마스 휴가 시즌이 시작되기 때문에 법안 처리 일정은 더 빠듯하다.
공화당이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을 볼모로 잡는 것은 전쟁이 늘어지며 장기화되는 지원에 피로를 느끼는 여론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와 미시간대가 5~6일 1004명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48%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너무 많은” 돈을 쓴다고 평가했다. 27%만이 “적절하다”고 했다. 너무 많은 돈을 쓴다는 의견은 민주당원들 사이에서는 32%에 그쳤지만 공화당원들은 65%가 그렇다고 했다.
이에 견줘 미국 진보층은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현실 속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주도하는 이스라엘 지원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시비에스(CBS)와 유고브가 6~8일 2144명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가자지구 전쟁을 다루는 방식을 지지한다는 비율은 39%에 그쳐 10월보다 5%포인트 줄었다.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61%로 5%포인트 늘었다. 특히, 민주당원들 사이에서 ‘이스라엘을 너무 많이 지원하고 있다’는 응답이 38%로 10월보다 10%포인트나 증가했다. 팔레스타인 사망자가 1만7천명이 넘었는데도 바이든 대통령이 이스라엘에 휴전을 요구하지 않자 전통적 지지층인 무슬림들과 진보적 유권자들이 이탈하는 모습이다.
미국의 이런 태도는 국제 여론으로부터도 미국을 고립시키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10일 카타르에서 열린 포럼 연설에서 “유엔 안보리는 지정학적 분열 때문에 마비되고, 가자지구 휴전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키지 못해 그 신뢰도가 약화됐다”고 말했다. 지난 8일 안보리의 휴전 촉구 결의안이 미국 홀로 거부권을 행사해 무산된 것을 개탄한 것이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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