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15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싱가포르 에어쇼 2022’에서 미 해병대 F-35B 라이트닝 II가 비행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군용 제트기가 추락했습니다. 저는 조종사입니다. 비행기가 어디에 있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어딘가에 추락했을 것입니다. 저는 탈출했습니다. 구급차를 보내주실 수 있나요.”
17일(현지시각) 조종사가 911 상담원과 통화하며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는 순간에도 미 해병대 소속 스텔스 전투기 에프(F)-35비(B)는 주인 없이 홀로 비행을 하고 있었다. 이후 추락한 전투기는 하루 만인 18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 기지 북동쪽에서 잔해가 발견됐다.
미국에서 최근 추락한 스텔스 전투기가 하루 동안 행방이 파악이 안돼 논란이 된 가운데, 해당 전투기가 비상 탈출한 조종사 대신 100㎞가량 홀로 비행하다 추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종사 보호 기능’ 때문에 한동안 비행을 유지했다는 게 미 해병대의 설명이다.
에이피(AP) 통신은 미 해병대가 F-35B 전투기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윌리엄스버그 카운티의 한 지역에 추락할 때까지 60마일(약 100㎞)을 혼자 비행했다고 밝혔다고 21일 전했다.
이는 비상상황에서 조종사가 의식을 잃는 등의 상황을 고려한 자동조종 기능 때문에 이뤄진 일이라는 게 해병대의 설명이다. 해병대는 “전투기가 안정적으로 수평비행을 하고 있다면 계속 유지하려고 한다. 상승하거나 하강하도록 설정됐다면 다른 명령이 나올 때까지 1G(중력가속도 1배) 상태를 유지할 것이다”며 “조종사가 무능력하거나 상황 인식을 하지 못할 경우 조종사를 구하기 위해 설계됐다”고 밝혔다.
추락한 ‘F-35B 라이트닝 II’ 전투기는 17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비행 도중 조종사가 비상 탈출한 뒤 ‘실종’됐다. 레이더 탐지를 피하는 스텔스 기능 때문에 미군은 전투기의 행방을 파악하지 못했고, 하루 뒤에야 잔해를 발견했다. 대당 8000만 달러(약 1062억원)에 달하는
첨단 전투기가 하루 동안 행방불명되는 일이 발생하자 미국 안에서는 황당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미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 기지 군 장병들이 18일(현지시각) 윌리엄스버그 카운티에서 F-35B 전투기가 추락한 주변에 거주하는 주민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해병대는 “항공기는 보통 레이더나 트랜스폰더(전파송수신기) 코드를 통해 추적되는데, 조종사가 탈출하자마자 전투기는 보안통신을 삭제하도록 설계됐다”며 항공기 행방 추적이 어려웠던 이유를 설명했다. 에이피는 사고 전투기가 피아 식별 신호를 보냈지만 항공관제시스템에 탐지되지 않았고, 뇌우와 낮게 깔린 구름 등 악천후도 수색을 어렵게 했다고 짚었다. 해병대 등은 “스텔스 기능 때문에 전투기 추적이 전통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이뤄져야 했다”고 밝히며 스텔스 기능도 전투기를 찾는 데 방해가 됐다고 밝혔다.
해병대는 조종사 보호기능 덕분에 추가 피해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해병대는 “전투기가 기지 주변의 인구 밀집 지역에 충돌을 피하고 다행히 빈 들판과 숲에 추락했다”고 밝혔다. 사고 원인은 조사중이며 에이피는 결과를 발표하는데 몇달이 걸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편, 에이피는 낙하산을 펴고 탈출한 조종사를 지상에서 발견한 주민의 911신고 녹취를 공개했다. 주민은 911에 “우리 집 뒷마당에 조종사 한명이 착륙했다. 구급차를 보내줄 수 있냐”고 물었다. 조종사는 주민에게 자신을 47살이라고 밝혔고, 2000피트(약 60m)에서 추락한 것 같다며 등만 아프다고 말했다고 한다. 현재는 건강에 큰 이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병대는 그가 경험이 풍부한 숙련된 조종사라고 밝혔다.
이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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