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병원에서 8년 동안 환자와 가족들을 상담해온 한국계 준 박(Joon Park·41) 목사가 자신의 이야기를 다룬 CNN 보도. 준 박 엑스(옛 트위터) 갈무리
“그는 환자들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여전히 그들을 생각한다.”
미국의 한 종합병원에서 임종을 앞둔 환자와 그 가족 수천명의 이야기를 들어온 사람이 있다. 그는 자신에 대해 ‘슬픔을 잡는 사람(grief catcher)’이라고 표현한다. 미국 플로리다주에 있는 1040병상 규모의 탬파 종합병원에서 8년 동안 환자와 가족들을 상담해온 한국계 목사 준 박(Joon Park·41)의 이야기다.
미국 시엔엔(CNN) 방송은 박 목사의 사연과 인터뷰를 19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세상을 떠났지만 박 목사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이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지나온 삶을 후회하거나 죽지 않게 해달라고 호소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암에 걸리기 전까지 거리에서 살며 뮤지션을 꿈꾸던 청년은 박 목사에게 “꿈을 좇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며 한번도 찾지 않던 ‘집’에 대한 노래를 마지막으로 남겼다고 한다. 또 박 목사는 갓 태어난 세쌍둥이를 잃은 여성의 비명을, 죽지 않게 기도해달라고 부탁하던 10대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시엔엔은 박 목사가 절망을 이해하기 때문에 임종 환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 잘 맞았다고 했다. 박 목사의 ‘절망’은 어린시절의 기억이다. 한인 이민자 2세로 플로리다 라르고에서 자란 박 목사는 권위적인 부모 밑에서 언어적·신체적 학대를 당했다고 회상했다. 성인이 된 뒤 이를 극복하는데 ‘영성’에서 위안을 얻었다고 한다. 자연스레 목사가 되기 위해 2008년 노스캐롤라이나의 한 신학교에 입학한 그는 “나처럼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되고, 그들이 목소리를 내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러한 생각은 그를 병원으로 이끌었다.
좋든, 나쁘든 자신의 경험을 통해 환자와 가족들과 깊게 공감하게 됐다는 박 목사는 “오직 완전한 연민과 이해로 상대를 보고, 듣고, 상대방이 되어보는 법을 (환자들과 만나며) 배웠다”고 했다. 그는 자신에 대해 성직자(priest)와 치료사(therapist)의 중간 성격인 ‘치료 목사’(therapriest)라고 표현하며 “환자에게 종교를 강요하기 위해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위로가 되려 그곳에 있는 것이다”고 자신의 역할에 관해 설명했다.
준 박 목사(오른쪽). CNN 방송 누리집 갈무리.
다만 오랫동안 일을 하며 박 목사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게 됐다. 그러나 이러한 두려움 덕분에 주변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며 관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그는 말했다.
삶의 불꽃이 꺼져가는 환자들에게 ‘후회’는 공통적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박 목사는 “환자들 대부분 ‘나는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만 했을 뿐 내가 원하는 것은 하지 않았다’라는 후회를 한다”고 전했다.
또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걱정도 임종을 앞둔 이들을 사로잡는 감정이다. ‘제가 없으면 사랑하는 사람들이 괜찮을까요?’ ‘누가 엄마를 돌보겠습니까?’ ‘누가 아빠를 병원에 데려갈까요?’ ‘제가 없으면 아들과 딸이 어떻게 지낼까요?’ 박 목사는 “임종을 잘 받아들이는 환자도 자신의 죽음이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걱정한다”고 말했다.
박 목사는 환자들의 후회에 대해 “늘 우리의 잘못은 아니고, 때때로 우리가 가진 자원이나 시스템, 주변 문화가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며 “지금 마침내 자유를 찾은 환자를 온전히 봐주고 (이야기를)들어주는 것이 내 희망”이라고 했다.
그는 오늘도 환자들의 개인정보를 밝히지 않는 선에서 병원에서의 경험을 인스타그램과 ‘엑스’(옛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공유하며 ‘죽음’을 주제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