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매카시 미국 하원의장이 지난달 31일 연방정부 부채 한도 적용 유예 법안 통과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1월 선출 때부터 공화당 초강경파에 휘둘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케빈 매카시 미국 하원의장이 결국 당내 반란에 직면했다. 매카시 의장 등 공화당 다수가 추진한 법안들이 본안 투표도 전에 사장돼 그의 리더십이 크게 흔들리게 된 것이다.
미국 하원은 6일 가스 스토브에 대한 규제를 제한하는 것을 포함한 법안 4건에 대한 절차 투표를 했으나 찬성 206표 대 반대 220표로 부결됐다. 하원 다수당 지도부가 수정안 처리 방식 등 법안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제시한 것을 놓고 하는 절차 표결은 일종의 요식행위로, 이게 부결된 것은 2002년 이후 처음이다.
이는 초강경파 의원 모임 ‘프리덤 코커스’를 중심으로 공화당 의원 11명이 반대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프리덤 코커스 소속 의원들이 민주당과 같은 투표를 해 매카시 의장을 곤경에 빠트릴 수 있다는 전망이 현실화한 것이다.
초강경파는 하원에 이어 상원을 통과해 지난 4일 조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부채 한도 적용 유예 법(재정 책임법)에 반발해 실력 행사에 나섰다. 이 법안에는 하원에서 민주당 165명, 공화당 149명이 찬성했다. 이때도 반대표를 던진 공화당 초강경파는 부채 한도 적용을 2025년 1월까지 유예해 초유의 연방정부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차단한 법이 자신들의 의제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이 법은 2024·2025년 예산을 사실상 현재 수준으로 동결했는데, 프리덤 코커스는 복지 예산 대폭 삭감 요구가 반영되지 않은 것을 두고 매카시 의장의 배신이라고 주장한다.
프리덤 코커스 소속인 댄 비숍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매카시 의장은 우리와 합의한 것을 완전히 버렸다”며, 다시 만나 하원 운영 방식을 논의하자고 요구했다. 매슈 게이츠 의원은 “제왕적 하원의장 시대”와 싸우겠다고 했다.
프리덤 코커스는 의장 선출 투표에서 14차까지 일부가 매카시 의장을 지지하지 않아 15차례 투표한 끝에 그가 의장에 오르게 만들었다. 164년 만에 가장 많은 횟수를 기록한 의장 선출 투표였다. 이때부터 공화당(222석)과 민주당(213석) 의석 차이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 프리덤 코커스가 캐스팅보트를 쥐고 매카시 의장을 ‘식물 의장’으로 만들 수 있다는 예상이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매카시 의장은 충분히 보수적이라는 평가도 받지만 프리덤 코커스 쪽은 성에 차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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