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가운데)이 29일 조 바이든 대통령, 마크 밀리 합참의장과 함께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열린 메모리얼데이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알링턴/AP 연합뉴스
중국 정부가 6월2~4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대화)를 계기로 미-중 국방장관 회담을 하자는 요구를 거절했다고 미국 국방부가 30일 밝혔다.
패트릭 라이더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과 리상푸 중국 국방부장의 회동에 대한 제안을 중국이 거부했다”고 밝혔다. 오스틴 장관은 리 부장에게 친서를 보내는 등 샹그릴라대화를 계기로 만나자고 요구해왔다.
라이더 대변인은 “중국이 군사 당국 간 의미 있는 교류를 거부한 것은 우려스럽다”면서도 “인민해방군과 소통 라인을 열려는 우리의 의지는 감소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우리는 경쟁이 충돌로 번지지 않도록 양국 군사 당국 간 소통 라인을 유지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하게 믿고 있다”고 했다.
이제까지 미·중 국방장관이 샹그릴라대화에 참석할 경우 별도 회동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오스틴 장관은 지난해 이 행사에서 웨이펑허 당시 중국 국방부장을 만나 대만과 북한 문제 등을 논의했다.
중국이 입장을 바꾸지 않아 미-중 국방장관 회담이 불발되면 아시아 지역 안보 문제를 협의하는 샹그릴라대화의 분위기도 경색될 것으로 보인다. 주일미군기지를 방문하고 싱가포르로 향하는 오스틴 장관은 한-미-일 국방장관 회담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따라서 이번 행사가 중국에 대항하는 국가들과 중국 사이의 틈만 더욱 강조하는 효과를 낼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곧 실시하겠다고 예고한 위성 발사에 대한 미-중 국방 당국 고위급 간 논의도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이달 10~11일 오스트리아에 빈에서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을 만난 데 이어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이 25일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을 워싱턴에서 만났다.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양국 장관급이 워싱턴에서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잇단 고위급 접촉이 양국 대화를 촉진하리라는 기대가 커졌다.
하지만 중국이 국방장관 회담을 거절한 것은 대화의 물꼬를 일부 트면서도 미국의 압박에 여전한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만을 둘러싼 미국과의 군사적 대립을 가장 심각하게 여긴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도 해석된다. 오스틴 장관은 지난 16일 상원 세출위원회에 출석해 “곧 대만에 상당한 수준의 추가적 안보 원조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양국 국방장관이 만나려면 리 부장에 대한 제재를 풀어야 한다는 중국 정부의 요구를 미국이 수용하지 않은 것도 회담 불발 이유로 거론된다. 미국은 올해 3월 국방부장에 오른 그가 중앙군사위원회 장비개발부장으로 있던 2018년에 제재 명단에 올렸다. 중국이 러시아로부터 수호이-35 전투기와 S-400 방공미사일 시스템 등을 사들여 대러 제재를 위반하는 데 역할을 했다는 이유였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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