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최초로 국가 부도에 이를 수 있다고 예고된 날짜가 20여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조 바이든 대통령과 의회 지도부가 첫 협상에 나섰지만 빈손으로 끝났다. 19일 일본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 등 아시아·태평양 순방에 나서는 바이든 대통령은 이 기간에 디폴트(채무불이행)가 닥친다면 못 갈 수도 있다는 뜻을 밝혀 미국의 부채 위기가 외교 일정에 차질을 끼칠 가능성도 떠올랐다.
바이든 대통령은 9일 백악관에서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 등 상하원 지도부와 만나 부채 한도 인상 조건을 협의했다. 백악관은 조건 없는 인상, 공화당은 지출 삭감을 조건으로 내걸고 대치하는 상태다.
이날 회동도 평행선을 달렸다. 바이든 대통령은 회동 뒤 기자회견에서 “생산적 만남이었다”며 12일에 의회 지도부를 다시 만난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화당이 끝내 합의해주지 않으면 수정헌법 제14조를 발동할 수도 있다고 했다. 정부의 부채 상환 의무를 규정한 이 조항을 근거로 의회 동의 없이 부채 한도를 넘는 채권을 발행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부채 한도를 의회가 정하도록 한 법률을 무시하고 위헌 소송까지 감수해야 해 극약 처방이다.
매카시 의장도 기자들과 만나 “모두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새로운 움직임은 없었다”고 전했다. 공화당이 주도하는 하원은 예산을 1천억달러(약 132조원) 이상 줄여 2020년 수준으로 되돌리는 것을 부채 한도 인상과 결부시킨 법안을 통과시킨 상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9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왼쪽) 등 의회 지도부를 만나 부채 한도 인상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미국 연방정부는 올해 1월19일에 2021년 말 의회가 정한 31조4천억달러(약 4경1592조원)의 부채 한도에 도달해 빚을 더 내지 못하고 세금 등에만 의존하는 비상 조처를 시행하고 있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이마저도 한계가 보인다며, 기존 부채의 이자도 갚지 못하는 디폴트에 빠지는 날을 뜻하는 ‘X-데이’가 이르면 6월1일이 될 수 있다고 최근 경고했다.
그에 따라 19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개막하는 주요 7개국 정상회의 등 아시아·태평양의 여러 외교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바이든 대통령 일정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그는 22일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파푸아뉴기니를 방문해 태평양 도서국 정상들을 만나고 이후 오스트레일리아로 이동해 24일 쿼드(미국·인도·일본·오스트레일리아)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중국 견제 의도로 가득한 이 일정은 디폴트 예고 시점과 붙어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주요 7개국 정상회의 참석을 취소할 수도 있냐는 질문에 “참석 계획은 여전하지만, 확실히 이것(부채 한도 협상)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답했다. 순방 기간에 디폴트가 현실화되는데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가지 않고, 일을 마칠 때까지 (미국에) 머물 것”이라고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방일 기간엔 한·미·일 정상회의도 예정돼 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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