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버지니아주에 있는 국방부 건물. EPA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의 전황 등과 관련해 극히 민감한 정보가 담긴 미국의 기밀문서를 대량으로 유출한 인물이 미군 부대에서 일하는 과시욕이 강한 20대 초중반 남성이라고 미국 <워싱턴 포스트>(WP)가 보도했다. 이 문서들이 미군에서 나온 진짜 기밀임이 어느 정도 확인되며 “도·감청 의혹은 터무니없는 거짓”이고 문서 내용도 “상당수 위조”(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라는 대통령실의 해명이 더 이상 설 곳이 없어졌다.
<워싱턴 포스트>는 12일(현지시각) 문서를 유출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과 자주 소통했던 채팅방 회원을 인용해 그가 2020년 개설된 ‘서그 셰이커 센트럴’(Thug Shaker Central)이라는 이름의 회원 수가 20여명인 채팅방의 방장으로, ‘OG’(오지)라는 별명을 썼다고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오지는 초대받은 회원들만 입장할 수 있는 이 채팅방에서 미국 정부가 수집한 극비 정보들을 올려, 자신보다 어린 남성과 소년들에게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가르쳐온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자신을 “군 기지”에서 근무한다고 소개하며 기밀을 집으로 가져온다고 밝혔다. 미군 부대의 기밀 관리가 극히 허술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지는 처음엔 기밀문서를 옮겨 적어서 올렸지만, 총기나 게임에 관심이 더 많은 어린 회원들이 크게 관심을 갖지 않자 지난해 말부터 화를 내며 아예 문건을 사진으로 찍어 올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유출된 문서에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의 동향, 이집트의 러시아 무기판매 시도설 등 극히 민감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신문은 이런 식으로 오지가 올린 기밀문서는 애초 알려진 100장보다 많은 300장에 이른다고 전했다.
신문이 입수한 동영상을 보면, 오지가 사격장에서 보호 장구를 착용하고 장총을 들고 사격을 하면서 인종차별적인 욕설을 내뱉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워싱턴 포스트>의 인터뷰에 응한 한 회원은 오지가 특별한 정치적 성향은 없어 보였고, 특정국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오지가 문서를 게시한 채팅방은 ‘곰 대 돼지’라고도 불렸는데, 이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쪽 모두에 대한 조롱 섞인 표현이다. 이 회원은 오지를 미국 정보기관의 도청을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과 비교할 수는 없다며 “그(오지)를 절대 내부고발자라고 부를 수 없다”고 말했다.
오지가 올린 기밀문서는 2월부터 확산되기 시작했다. 지난 2월28일 채팅방에 있던 10대가 다른 디스코드 서버에 기밀문서 수십장을 올렸다. 3월4일엔 ‘마인크래프트 어스 맵’이라는 또 다른 디스코드 서버에도 문서가 올라왔다. 이어 지난 5일에 러시아 텔레그램 채널, 미국 이미지 사이트 4챈(Chan), 트위터 등으로 문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며 <뉴욕 타임스>의 8일 보도로 이어졌다.
사태가 커지자 오지는 “일이 터졌다. 이제 하나님의 손에 맡기게 됐다”며 회원들과 연락을 끊었다. 하지만 인터뷰에 응한 회원은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오지를 추적하고 있는 최근 며칠에도 연락을 취했다며 “그가 매우 혼란스럽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듯 보였다”고 말했다.
조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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