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일 크렘린궁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모스크바/신화 연합뉴스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진행되는 가운데 중국과 러시아가 정상회담으로 더욱 밀착하는 것은 “러시아의 범죄에 대한 외교적 보호막”이고, “정략결혼”이라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중-러 결속 강화가 다분히 미국을 겨냥한 것임을 염두에 둔 반응으로 보인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20일 ‘2022 국가별 인권 보고서’ 발표 기자회견에서 “국제형사재판소(ICC)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한 직후 시진핑 주석이 러시아를 방문한 것은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잔학 행위에 책임을 묻는 것에 중국은 의무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또 “중국은 규탄하기는커녕 러시아가 그런 범죄를 계속 저지르도록 외교적 보호막을 제공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블링컨 장관은 시 주석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중재 노력을 펴는 것에 대해서는 “세계는 중국 등의 지원을 받는 러시아가 전쟁 상황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식으로 동결하려는 전술적 움직임에 속으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유엔헌장의 원칙들에 기초한 전쟁 종식을 돕는 데 전념한다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도 접촉하고 러시아가 군대를 철수하도록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블링컨 장관은 이에 앞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3억5천만달러(약 4576억원) 규모의 추가 군사 원조 계획을 발표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도 이날 브리핑에서 지금 단계에서 휴전은 “사실상 러시아의 정복을 인가해주는 것”이라며 “이 전쟁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군대를 철수시키면 당장 끝날 수 있다”고 했다. 커비 조정관은 “시 주석은 확실히 미국의 세계적 지도력에 도전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푸틴 대통령을 잠재적 동맹으로 본다”며 “푸틴 대통령은 전쟁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는 가운데 시 주석을 구명줄 같은 것으로 여길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중-러 밀착은 “애정이라기보다는 정략결혼”이라고 했다.
미국 고위급 인사들이 제3국 간 정상회담을 직설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 판도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뉴욕 타임스>는 중국의 러시아에 대한 살상무기 제공 가능성을 경고해온 미국 관리들은 중국이 여전히 포탄 등을 제공하는 것을 고려 중이라는 입장이라고 보도했다.
나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전인 지난해 2월 베이징에서 한 정상회담에서 “무제한 우정”을 다짐한 중·러가 더 단결해 미국에 대한 도전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시 주석은 이달 6일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연설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 국가들이 우리에 대해 전면적인 봉쇄, 포위, 탄압”을 하고 있다며, 이례적으로 미국을 직접 거론하며 비판했다. 그는 러시아 방문 직전 현지 매체 기고에서도 “패권, 패도, 괴롭힘 행태의 해악이 심각”하다며 미국을 다시 겨냥했다. 러시아와 연대를 강화해 미국을 견제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미국과 중·러의 대립 심화는 이날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대한 대응을 논의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도 뚜렷이 드러났다. 미국은 대북 압박 동참을 요구한 반면, 중국과 러시아 대표는 현재 진행 중인 한-미 연합연습이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고 북한의 행동을 부추기고 있다고 반박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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