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타나모수용소 운영 초기인 2002년 1월 새로 도착한 수감자들이 분류를 위해 대기하고 있다. 출처: 미국 국방부
국제법은 물론 미국 국내법도 무시하면서 압송한 테러 용의자들을 재판도 없이 가둬왔던 관타나모수용소에서 파키스탄인 형제가 20년 만에 풀려났다.
미국 국방부는 알카에다 관련 용의자로 체포돼 수감 생활을 해온 압둘 라힘 굴람 라바니(55)와 모하메드 아메드 굴람 라바니(53) 형제를 석방했다고 24일 밝혔다. <에이피>(AP) 통신은 형제는 이날 원래 살던 파키스탄 카라치에 도착했으며 조만간 가족을 만날 예정이라고 전했다.
라바니 형제는 9·11 테러로부터 1년이 지난 2002년 9월 알카에다 쪽에 주거와 운송 편의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파키스탄 당국에 체포됐다가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아프가니스탄에 설치한 수감 시설로 보내졌다. 2004년에는 쿠바에서 미국이 점유하고 있는 해군기지 내 관타나모수용소로 압송됐다. 이들 형제는 애초 2021년에 파키스탄으로의 이송이 결정됐다. 왜 조처가 늦어졌는지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미국 국방부는 이들이 왜 석방될 수 있었는지, 이미 결정된 석방이 왜 늦어졌는지는 설명하지 않고 “수감자 규모를 책임 있게 줄이고, 궁극적으로 수용소 폐쇄에 집중하는 미국의 노력에 대한 파키스탄과 다른 파트너 국가들의 지원에 감사한다”고만 했다.
파키스탄 남부 도시 카라치에서 파트타임 택시 기사로 일한 라바니 형제는 9·11 테러를 일으킨 알카에다를 도왔다는 중대 혐의를 받고 장기 수감 생활을 했다. 하지만 다른 수감자들과 마찬가지로 죄의 유무를 따지는 재판을 받지 못했다. 미군 당국은 이들이 자백을 철회하지 않았고, 이들한테 별다른 정보도 얻어내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들 형제는 중앙정보국 요원들한테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해 왔다. 무스타크 아메드 칸 파키스탄 상원 인권위원장은 트위터에 올린 석방 환영 글에서 “재판도, 법원의 다른 절차도, 기소도 없었다”며 “무고한 사람들이 관타나모만에 21년간 수감돼 있었다”고 했다.
동생 라바니는 2013년부터 석방을 요구하며 거듭 단식농성을 해 몸이 상하고, 튜브로 음식을 강제로 주입당했다. 2016년 가석방 심사 때 미군 당국은 그에 대해 누구를 위해 일하는지 상관하지 않고 돈을 버는 데만 집중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그의 아내는 남편이 체포될 당시 임신 5개월이었다.
라바니 형제의 석방으로 ‘테러와의 전쟁’ 초기인 2003년에는 680명까지 늘었던 관타나모 수감자는 이제 32명으로 줄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불법 수감과 고문 등 인권 침해의 상징이 된 이 수용소의 폐쇄를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남은 32명 중 18명은 본국과 합의되면 석방이나 송환 형태로 돌려보내기로 잠정적으로 결정된 상태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석방 대상자들 중 다수인 예멘 출신자들은 본국이 내전 중이라 수용 의사가 있는 제3국을 찾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