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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중국 기구’ 파문 확산…블링컨 “무책임한 행위” 반발, 방중 연기

등록 2023-02-04 02:49수정 2023-02-04 17:22

미국 몬태나주 빌링스 상공에서 포착된 중국발 기구.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몬태나주 빌링스 상공에서 포착된 중국발 기구. 로이터 연합뉴스

5일부터 예정됐던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의 중국 방문이 미국 본토 상공에 나타난 중국의 ‘정찰용 기구’ 탓에 전격 취소됐다. 출발 예정일에 중국 방문 취소를 통보한 블링컨 장관은 자신의 방문 직전에 중국의 기구가 미국 영공을 침범한 것은 “더욱 무책임한 행위”라며 반발했다.

미국 국무부 고위 관계자는 3일(현지시각) 블링컨 장관이 방중 일정을 무기한 연기했다고 밝혔다. 블링컨 장관은 이날 밤 출발해 이틀간 베이징을 방문하면서 친강 신임 중국 외교부장과 미-중 관계 현안들과 갈등 관리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었다. 시 주석을 만날 가능성도 언급돼왔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만난 조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이 합의한 고위급 교류 재개가 첫발부터 삐끗하면서, 미-중 관계 해빙의 단초를 마련할 수도 있으리라던 기대도 무산됐다.

블링컨 장관의 중국 방문 무기한 연기 파동은 미국 국방부가 몬태나주 상공에서 중국의 “정찰용 기구”가 발견됐다고 2일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미국 국방부는 중국발 기구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격납고 150개가 있는 민감한 지역인 몬태나주에 상공에 나타나기는 했지만 중국의 저위도 정찰위성의 성능 등을 감안했을 때 이 기구가 특별히 “군사적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미국은 중국 기구의 영공 침범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며 항의했다. 국무부는 블링컨 장관 등은 1일 밤 주미 중국대사관과 이 문제로 접촉했다고 밝혔다. 3일에는 블링컨 장관이 중국 외교 최고 사령탑인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공작위원회 판공실 주임과 통화해 이번 사건은 “주권 침해이며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뉴욕 타임스>가 보도했다. 국무부 고위 관계자는 “우리 영공에 이런 기구가 진입한 것은 우리의 주권과 국제법에 분명히 위배되는 용납할 수 없고 무책임한 행위”라며 “지금은 블링컨 장관이 중국을 방문하기에 적절한 상황이 아니라고 결론내렸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정부에 3일 이런 방침을 통보했으며, 블링컨 장관은 적절한 상황이 되면 중국을 방문할 것이라고 했다.

블링컨 장관은 이날 미국을 방문한 박진 외교부 장관과의 기자회견에서 “건설적인 방문을 하기에 좋은 상황이 아니므로” 방문을 연기했다고 밝혔다. 이어 “중국의 기구는 (나의) 방문 목적을 허무는 것”이라며 “이 기구를 미국 밖으로 내보내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과의 외교적 간여를 지속하겠다는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

앞서 미국 정부는 이 기구를 격추할 경우에 대비해 전투기를 출격 대기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당장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는 데다, 잔해가 민간에 피해를 입힐 수도 있다는 이유로 요격하지는 않기로 했다. 미국 국방부는 필리핀을 방문 중인 로이드 오스틴 장관이 이 문제로 긴급 회의를 열었으며, 바이든 대통령은 상황과 함께 군사적 대응 방안에 대해 보고받았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는 유감을 표하며 상황을 관리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중국 정부는 이 기구는 군사 정찰용이 아니라 민간 연구용인데 불가항력으로 “정해진 경로를 벗어났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중국 외교부는 또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적절히 다루고 싶다”는 의사를 나타냈다.

블링컨 장관의 방중 계획은 양국 관계가 계속 저점을 향해 가는 와중에 마련된 것이어서 관계 회복의 실마리를 마련할 수도 있다는 기대를 낳기도 했다. 미국은 중국에 대한 반도체 분야 등의 수출 통제를 강화하고, 중국은 최근에도 대만에 대한 무력시위를 벌이며 긴장을 높여왔다.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필리핀 방문 중 현지 군사기지 4곳에 대한 미군의 접근권을 추가로 확보하며 중국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강화했다.

한편 미국을 방문 중인 박진 외교부 장관은 애초 중국 방문길에 오르기 직전인 블링컨 장관을 만나 북핵 문제를 놓고 한-미의 중국에 대한 대응을 논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었다. 하지만 블링컨 장관의 방문 계획 취소로 미-중이 얼굴을 맞대고 북핵 문제를 심도 있게 협의할 기회도 사라졌다.

워싱턴/ 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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