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이 2020년 4월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코로나19 바이러스 상황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코로나19 바이러스와의 싸움을 지휘하며 미국은 물론 세계적 차원의 유명인사가 된 앤서니 파우치(81)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이 12월에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의료고문도 겸하는 파우치 소장은 22일 올해 연말에 공직을 떠나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50년 이상 봉직한 뒤, 아직도 내 분야에서 많은 에너지와 열정을 갖고 있을 때 내 경력의 다음 단계를 추진하기로 했다”고 했다. 또 “세계가 미래의 감염병 위협을 맞는 것에 대비하도록 돕는 차세대 과학 지도자들에게 영감과 조언을 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1968년 27살 나이에 국립보건원에서 일을 시작한 파우치 소장은 그 자신이 미국의 현대 감염병 대응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로널드 레이건부터 시작해 대통령 7명의 의료고문을 맡아 에이즈, 조류독감, 에볼라, 지카 등 여러 바이러스에 대한 대응을 지휘했다. 2020년부터는 코로나19, 최근에는 원숭이두창과의 싸움까지 벌이고 있다.
파우치 소장에게 가장 큰 위기는 미국에서 100만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가고 지금도 진행 중인 코로나19 바이러스 문제였다. 그는 사태 초기에 마스크를 착용할 필요가 없다고 밝히는 실책을 범했다. 이에 대해서는 당시 마스크 물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하지만 파우치 소장이 없었다면 더 많은 희생이 불가피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그는 코로나19 대응을 두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여러 차례 이견과 갈등을 보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효과 없는 약물을 홍보하자 사실을 바로잡아야 했고, 마스크 착용 의무화를 놓고도 그와 맞섰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선을 앞둔 2020년 10월에는 “그는 여기에 500년 동안 있었다”, “사람들은 파우치와 이 모든 멍청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데 지쳐 있다”며 파우치 소장을 해임하고 싶다고 했다. 파우치 소장은 방역 완화를 요구하는 공화당 의원들과 언쟁하기도 했다. <시엔비시>(CNBC)는 그가 친구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하루도 쉬지 못하고 잠은 3~4시간밖에 못 자면서 코로나19에 대응하고 있다고 호소했다고 전했다.
매일 텔레비전에 나오는 그의 칼칼한 목소리에 실린 과학적이고 명료한 메시지는 미국인들에게 신뢰의 대상이 됐다. 높은 인기 덕에 그의 캐리커처가 장신구, 양말, 도넛, 티셔츠에 들어가고, 그 이름을 딴 음료를 파는 식당들도 등장했다.
파우치 소장의 코로나19 대처에 대한 대중의 신뢰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집권하자마자 그에 대한 신임을 표현하도록 만들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파우치 소장의 퇴임 예고 소식을 접하고 낸 성명에서 “그의 업무에 대한 헌신은 확고했고, 그는 그것을 견줄 데 없는 정신, 에너지, 과학적 진실성으로 해냈다”고 칭찬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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