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싱글러브 전 주한미군 참모장의 안장식이 19일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열리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주한미군 철수 방침에 반대하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 갈등을 빚고 전역한 존 싱글러브 전 주한미군 참모장이 19일(현지시각)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올해 1월 100살을 일기로 별세한 싱글러브는 1943년 소위로 임관해 중앙정보국(CIA)의 전신인 첩보부대 전략사무국(OSS) 소속으로 나치 점령 하의 프랑스에 낙하산으로 침투하는 작전에 참가했고 중국 전선에서도 활동했다. 만주에서 중앙정보국 활동을 이끈 뒤 한국으로 부임했고, 1953년 김화지구 전투에는 대대장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베트남전쟁에서는 북베트남군의 보급로로 라오스를 지나는 ‘호치민 트레일’ 파괴 작전을 이끌었다.
3개 전쟁을 경험하면서 군에서는 명성이 있는 편이었으나 2성 장군에 불과했던 싱글러브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카터 당시 대통령에게 반기를 든 사건이었다. 그는 1977년 5월 <워싱턴 포스트> 인터뷰에서 1950년 한국전쟁 때처럼 주한미군 철수는 “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카터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 방침을 비판했다. 카터 대통령은 1976년 대선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공약으로 내걸었으며, 박정희 정권의 민주주의 탄압이 이런 정책을 추진한 주요 명분이었다. 싱글러브는 훗날 이 발언은 비보도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싱글러브는 본국으로 소환돼 카터 대통령과 면담했다. 카터 대통령은 그의 발언은 “정책 결정 뒤 군 장교들이 지녀야 할 적절한 태도에 심각하게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후 본토로 발령이 났으나 이듬해 다른 강연 기회 때도 카터 대통령의 정책을 비판한 후 전역했다. 카터 대통령과 싱글러브의 대립은 한국전쟁 때 해리 트루먼 대통령과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갈등에 비유되고는 했다.
싱글러브는 전역 후 세계반공연맹 총재를 맡는 등 반공 활동에 열심이었다. 텍사스 석유 재벌의 후원을 받아 니카라과, 앙골라, 아프가니스탄, 라오스 등지의 우익 민병대에 무기와 자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안장식에서 조태용 주미 한국대사가 대독한 조전을 통해 “자신의 진급과 명예보다 대한민국 국민을 전쟁으로부터 지키는 것이 군인으로서 가장 큰 보람이라는 장군의 말씀이 아직도 우리 국민의 가슴 속에 깊이 남아 있다”며 “대한민국은 장군님과 같은 위대한 영웅들을 잊지 않고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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