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세계 1위 통신장비 업체인 중국 화웨이를 퇴출하려는 것은 핵심 군사시설 주변에 화웨이 장비가 설치되는 것을 위협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미국 정부는 화웨이 장비가 핵무기 관련 통신을 가로채거나 교란할 수 있다는 판단까지 내렸다고 한다.
<시엔엔>(CNN)은 연방수사국(FBI) 등의 전현직 방첩 담당자 10여명을 인터뷰한 결과, 미국 정부가 2017년부터 중국의 감청 시설 설치 가능성에 대응하는 활동에 나선 것으로 파악됐다고 보도했다. 그해에 워싱턴 국립수목원에 중국 정부의 지원으로 중국식 정원에 설치하려던 탑이 워싱턴을 감시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논란이 일었다. 이 무렵부터 미국 정부는 중국 쪽의 주요 시설 주변 부동산 취득 동향 파악에도 착수했다.
<시엔엔>은 핵심 군사시설들이 있는 중서부 지역에서 소규모 통신사들이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는 게 특히 문제로 지적됐다고 밝혔다. 연방수사국은 화웨이 장비가 핵무기 사용을 관장하는 네브래스카주 전략사령부를 비롯한 주요 군사시설들의 통신을 가로채거나 교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전직 연방수사국 관리는 “가장 민감한 부분”인 핵무기 통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우려됐다고 말했다.
특히 2011년 한 통신사가 콜로라도주에서 몬태나주 방향으로 이어지는 25번 고속도로 주변을 중심으로 5개 주에 걸쳐 기지국 1천여개를 설치하면서 화웨이 장비를 쓴 게 관심의 초점이 됐다. 연방수사국은 미사일 격납고 근처에 설치된 기지국도 있는 데다, 교통·기상 감시용으로 기지국들에 카메라를 단 것도 군사시설 감시에 이용될 우려가 있다고 봤다. 연방수사국은 화웨이가 이익을 남기지 않으면서 장비를 저가에 공급하는 것을 수상하게 여겼다고 한다. 백악관은 25번 고속도로를 따라 설치된 기지국들에 대해 2019년에 보고를 받았고, 이후 연방통신위원회는 정부 보조금을 받는 통신사는 중국산 통신장비를 쓰지 못하게 했다. 또 이미 설치된 중국산 장비에 대해 유상 회수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크리스토퍼 레이 연방수사국 국장은 중국과 관련한 방첩 조사 건이 12시간마다 하나꼴로 개시되며, 현재 2천여 건이 쌓여 있다고 이 방송에 말했다. 연방수사국 쪽은 유타주의 극초음속 무기 실험 시설 주변에서 중국 업체가 부동산을 사려다 차단당한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미국 쪽은 화웨이 통신장비가 감청 등 비밀 첩보 활동에 이용된 사례는 아직 제시한 바 없다. 화웨이는 “미국에 수출하는 우리의 모든 제품은 설치 전에 미국 연방통신위가 검사하고 인증”하고, 미군 통신 대역은 화웨이 장비가 다루는 대역과 다르기 때문에 통신 교란이나 감청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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