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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총에는 총으로?…‘아메리칸 킬링필드’ 떠받치는 3대 거짓말

등록 2022-06-13 22:26수정 2022-06-14 02:40

총기 규제 반대론 허실 따져보니
① 총은 총으로 막아야?
②총이 아닌 악이 문제?
③수정헌법의 절대권리?
11일 미국 워싱턴의 워싱턴 모뉴먼트 앞에서 열린 총기 규제 강화 촉구 집회 참가자가 “더 이상은 안 된다”고 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11일 미국 워싱턴의 워싱턴 모뉴먼트 앞에서 열린 총기 규제 강화 촉구 집회 참가자가 “더 이상은 안 된다”고 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이번에야말로….’

텍사스주 초등학교 4학년 19명을 비롯해 21명이 몰살당하는 등 ‘총기 참사’가 잇따르는 미국에서 총기 규제론이 다시 힘을 받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집계로 2020년 총기 관련 사망자는 4만5222명으로 전년보다 14%나 증가하며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너무 많은 일상 공간들이 킬링필드가 돼가고 있다”며 의회의 신속한 총기 규제 입법을 주문했다.

이런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듯 민주당과 공화당의 상원 협상 대표들은 12일 21살 미만인 총기 구매자의 신원조회를 강화하고, 각 주들이 위험 인물들의 총기를 압수할 수 있는 법을 만들도록 예산을 지원하는 내용에 합의했다. 의미 있는 성과이지만, 나흘 전 하원이 대량 살상에 이용되는 돌격소총 구매 가능 연령을 18살에서 21살로 올리고 15발 넘는 탄환이 들어가는 탄창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에 비하면 상당히 미약한 규제책이다.

총기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미국 사회가 ‘소 잃고 외양간도 제대로 못 고치는’ 데는 총기 로비 집단의 힘과 공화당의 반대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은 때로는 노골적이고 때로는 지능적인 거짓말과 선동으로 총기 규제를 강화하려는 노력에 찬물을 끼얹어왔다. 총기 규제 반대론의 3대 ‘거짓 신화’의 허실을 따져본다.

■ 총은 총으로 막는 수밖에 없다?

총에는 총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는 게 총기 로비 단체인 미국총기협회(NRA)와 공화당의 유력한 논리다. 미국총기협회는 총기 규제가 “법을 준수하는 시민들이 스스로를 지키는 기본적 인권”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단순한 주장은 총기 규제 반대론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 누군가 총을 들고 설치는데 총이 아니면 무엇으로 막을 수 있냐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이 주장은 민간에서 전체 인구보다 많은 약 3억9천만정의 총기를 보유한 미국의 총기 사망자 수가 어떤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사실 앞에 설 자리가 없어진다. 2013년 보스턴대 연구팀 분석에서 총기 보급이 1% 늘 때마다 총기 살인은 0.9% 증가해 두 수치가 거의 정비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올해 1월 발표된 시민단체 ‘총기 안전 마을’의 분석에서는 규제가 느슨한 주일수록 총기 관련 살인과 자살이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총에는 총으로’라는 주장은 시민들 사이의 ‘군비 경쟁’을 부추겨 총기 판매를 늘리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방어용이라고 보기 어려운 돌격소총까지 이런 주장에 버무려져 합리화된다. 텍사스 유밸디와 그 열흘 전 흑인 10명의 목숨을 빼앗은 뉴욕주 버펄로 총격에서도 강력한 살상력을 지닌 AR-15 소총이 사용됐다.

총기 옹호론자들은 이런 사실에 굴하지 않는다. 지난 8일 총기 규제 강화 법안을 논의한 하원 청문회에서 공화당의 토머스 매시 의원은 돌격소총 구매 가능 연령을 21살로 3살 높이는 법안에 대해 “부도덕하다”고까지 주장했다. 18~20살 시민들에게 징집에 응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라고 해놓고 “그들에게 자신과 가족을 보호할 수단을 주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 총이 아니라 악이 문제다?

총기 사고는 ‘잘못 사용하는 사람들 탓’이라는 것도 규제 반대론의 대표적인 주장이다. 특히 이들은 총이 아니라 정신질환에 대처하자고 말한다.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는 유밸디 롭초등학교 사건 직후 기자회견에서 주의 느슨한 총기 규제가 아니라 사건의 배경이 된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터넷 매체 <복스>는 이런 주장에 대해 “모든 나라엔 정신이상자들과 버펄로 총격범 같은 극단주의자들이 있다”며, 핵심은 너무 많은 총기가 보급돼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제프리 스완슨 듀크대 교수는 모든 주요 정신질환을 치유해도 미국 내 폭력 범죄는 4% 감소할 뿐이라는 추정을 제시했다.

<뉴욕 타임스>는 2018년 이후 최악의 총기 사건 9건 중 6건을 21살 미만자가 저질렀다고 전했다. 버펄로와 유밸디 총격범은 둘 다 18살이다. 이 신문은 이번 참사가 벌어진 데는 △이 연령대 남성들의 충동 억제 기능 부족 등 생물학적인 특징 △대량 살상이 가능한 소총에 대한 접근권 △소셜미디어와 폭력적인 비디오게임의 영향 등이 두루 역할을 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이런 분석은 총기 폭력을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개인의 일탈’이 아닌 구매 연령 상향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한 문제’로 봐야 하는 이유를 뒷받침한다.

■ 헌법은 본래 절대적 총기 소유권을 줬다?

미국 수정헌법 제2조는 제도적 측면에서 총기 규제 반대론자들이 가진 가장 큰 무기다. 건국 초기인 1791년에 성문화된 이 조항은 “잘 규율된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state)의 안보에 필수적이므로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인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의 취지는 독립전쟁을 치른 지 얼마 안 된 연방국가 미국에서 개별 주들의 주요 방위력이었던 민병대가 무장할 권리를 보장하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편 무기 소유를 ‘인민의 권리’로 묘사했기 때문에 개인의 총기 소유권을 인정한다고 해석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2008년까지는 연방대법원에서 수정헌법 제2조를 개인의 자기방어를 위한 총기 소유권을 인정하는 조항으로 해석한 판결을 내놓은 적이 없었다. 이 조항이 만들어진 지 200년이 더 지나 연방대법원은 권총을 금지한 워싱턴시를 상대로 제기된 소송에서 5 대 4 의견으로 “자위권이라는 내재적 권리는 수정헌법 제2조가 보장하는 권리에서 중심적인 것”이라고 판단했다. 헌법 해석을 통해 개인의 자위를 위한 총기 소유를 처음으로 인정한 것이다.

개인의 총기 소유권을 헌법으로 보장된 절대 권리로 보느냐 아니냐는 총기 규제의 가능성과 정도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절대적 총기 소유 옹호론자들은 건국 초부터 헌법적으로 개인들에게 불가침적인 총기 소유권이 주어졌으므로 이를 제약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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