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힝야족 난민들이 2017년 10월 방글라데시로 도망치려고 물을 건너고 있다. AFP 연합뉴스
미국 정부가 미얀마 군부의 2017년 로힝야족 탄압을 5년이 지난 시점에 집단학살(genocide)로 규정하기로 했다.
미국 국무부 고위 관리는 당시 미얀마군의 행위를 집단학살이자 반인도 범죄로 규정하기로 결정했다고 20일(현지시각) 밝혔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21일 워싱턴의 홀로코스트기념관에서 열리는 ‘집단학살로 가는 버마(미얀마)의 길’이라는 이름의 전시회에 참석해 이를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미얀마 정부와 군부 인사들이 미국으로부터 추가 제재나 원조 제한 등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로힝야족은 미얀마 서부 라카인주의 무슬림 소수민족으로, 당시 미얀마 군인들과 일부 불교도들한테 살인, 방화, 성폭행 등 전면적이고 조직적인 탄압을 받았다. 사망자는 수천~수만명으로 추산된다. 약 85만명이 이웃나라 방글라데시로 도피해 난민촌에서 살고 있다.
미국 정부가 이제서야 이 사건을 집단학살로 규정한 것은 정치적 고려 때문이다. 미국은 사건 당시 군부와의 타협으로 국가고문 겸 외무장관으로 있던 아웅산 수치에게도 책임이 돌아갈 것을 우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건을 이유로 군부 인사들을 제재하면서도,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상징인 수치가 정부에서 계속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견제에 미얀마를 활용하려는 의도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피해 집단이 무슬림들이라는 점이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미온적 태도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런 가운데 수치는 2019년 12월 이 사건을 다루는 유엔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출석해 미얀마 군부는 방어적 행동을 했을 뿐이라고 주장해 국제적 반발을 샀다.
지난해 2월 군부 쿠데타로 수치가 실각하고, 쿠데타 반대 시위에 유혈 진압이 가해지면서 미국은 기존 태도를 유지할 이유가 줄었다. 로힝야족 사태에 대한 뒤늦은 성격 규정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전범”이라고 불렀고, 국제형사재판소(ICC)는 러시아 쪽의 전쟁범죄 혐의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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