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군 병사들이 19일 러시아의 이웃나라 에스토니아에서 실시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훈련에 참가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한 달째인 24일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특별정상회의가 예정된 상황에서 나토의 동·서 회원국들 사이의 입장 차이가 잇따라 불거지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가 정상회의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나토 평화유지군 파병을 공식 안건으로 제안하겠다고 18일 밝혔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평화유지군 파병은 15일 모라비에츠키 총리의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방문에 동행한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폴란드 부총리가 현지에서 처음 제안한 것이다. 카친스키 부총리는 평화 유지와 인도주의적 목적 수행을 위한 인력을 파견하자면서, 이들에게는 “스스로 방어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무장 병력을 보내자는 말이다.
미국 등 주요 회원국들과 나토 본부가 우크라이나 파병에는 완전히 선을 그은 상태에서 폴란드의 제안은 지나치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카이사 올롱런 네덜란드 국방장관은 “그것을 얘기하기에는 너무 이른 단계”라고 말했다. 평화유지군 목적의 파병이더라도 나토를 분쟁의 한복판으로 끌고들어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3차대전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이유로 여러 번 파병 불가 의사를 밝혔다.
폴란드가 미국 등 다른 나토 회원국들을 곤혹스럽게 만든 건 이게 처음이 아니다. 앞서 폴란드는 우크라이나가 자국 조종사들이 몰 수 있는 옛 소련제 전투기를 요청하자 미그-29기 28대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제3국의 전투기 제공을 독려하는 듯하던 미국은 태도를 바꿨다. 폴란드가 미그기들을 우선 독일의 미군기지로 보내겠다고 하자, 미군기지에서 발진한 전투기가 우크라이나로 가면 러시아가 직접적 도발로 간주할 가능성을 우려한 것이다. 미국은 전투기는 단 몇 분이면 러시아 영토로 진입할 수도 있기 때문에 다른 무기들과는 달리 봐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가 15일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 야네스 얀샤 슬로베니아 총리와 함께 러시아군의 공격을 받고 있는 키이우를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난 것도 큰 파격이었다. 이를 두고 용감한 행보였다는 평가도 나왔지만,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등에서는 사전 조율이 안 된 방문이라며 당혹스럽다는 반응도 뒤따랐다.
이처럼 나토 블록 안에서 러시아에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는 원칙적 공감대 속에서도 동유럽과 미국 및 서유럽의 입장이 갈리는 것은 러시아의 위협에 대한 ‘체감’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러시아와 가까운 데다 역사적으로 러시아의 압제에 시달렸던 동유럽 국가들은 우크라이나가 무너지면 다음은 자신들 차례일 수 있다는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따라서 러시아의 진격을 우크라이나에서 막아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슬로바키아는 옛 소련제 고성능 대공미사일인 S-300을 이웃 우크라이나에 제공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과 서유럽은 확전에 대한 공포가 무엇보다 크다. 러시아가 핵무기와 생화학무기 사용 등 선을 넘는 행동을 할 가능성도 이런 우려를 더욱 키운다. <뉴욕 타임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군사원조에 대해 어느 정도를 금지선으로 여길지가 미국의 고민거리라고 전했다. 미국 관리들은 전투기기 제공이 어렵다면 그 아래 단계의 어떤 무기까지 제공해도 되는지를 냉전시대의 대리전 사례들까지 참고하며 궁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러 제재와 우크라이나 원조 등 수단들을 많이 소진한 미국으로서는 어떻게 해야 러시아가 전쟁을 포기하게 만들지 대책을 강구해야 할 뿐 아니라 동유럽과의 조율이라는 숙제도 안게 됐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20일 바이든 대통령의 유럽행에 대해 “우크라이나인들을 지지하고 푸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맞서도록 세계를 계속 결집시키는 데 집중할 것이지만 우크라이나 방문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와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바이든 대통령이 폴란드도 방문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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