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4일 금융 제재 등 러시아에 대한 제재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에 대해 거듭 경고해온 강력한 제재를 발동했다. 러시아 은행을 대부분 아우르는 금융 제재와 수출 통제가 핵심으로, 유럽연합(EU)·영국·일본·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도 보조를 맞춰 일부 금융 제재나 수출 통제를 발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한 발표에서 “푸틴은 침략자”라며 “푸틴은 이 전쟁을 선택했고, 이제 그와 그의 나라는 결과를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미국은 협박에 맞설 것이고 자유를 옹호할 것”이라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의 최대 은행인 스베르은행과 2위 VTB은행을 포함해 은행 5곳, 이들의 자회사 수십 곳을 제재한다고 밝혔다. 미국 은행들은 30일 안에 이 은행들과의 거래를 중단해야 한다. 러시아 은행들의 미국 내 자산도 동결된다. 미국 재무부는 1·2위 은행이 러시아 금융 거래의 약 절반을 담당하고, 이들이 매일 거래하는 외환 460억달러(약 55조원)어치 중 80%가 달러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또 반도체, 컴퓨터, 통신, 정보 보안 장비, 레이저, 센서 등 정보기술(IT) 분야 상품들에 대한 수출을 제한하기로 했다. 러시아의 군사와 항공우주산업 등 첨단산업 분야 생산 능력을 훼손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러시아 정부와 국영기업 인사 10여명도 제재 명단에 추가했다. 러시아의 침공을 도왔다는 이유로 벨라루스 국방장관도 제재 대상이 됐다.
이번 대형 은행 제재는 미국이 22일 발표한 ‘1단계’ 제재에 포함된 은행 2곳에 대한 것보다 파급력이 훨씬 클 것으로 보인다. 당시 제재 대상 은행들은 군수산업 등과 거래하는 곳이지만 스베르은행 등은 규모도 크고 소매금융을 하는 곳들이라 러시아 민간기업들과 일반인들에게도 타격이 간다. 반도체 등의 장비 수출 제한도 러시아의 생산 능력을 제약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제재는 “즉각적으로, 또 오랜 시간에 걸쳐 러시아 경제에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클레이 라워리 국제금융협회 부회장은 “러시아 경제 전반에 큰 충격을 줄 것이며, 러시아의 일반인들도 효력을 느낄 것”이라고 전망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이 전했다.
하지만 강력한 제재 방안으로 거론돼온, 국제 금융 결제망인 스위프트(SWIFT)에 러시아 은행들의 접근을 차단하는 내용은 포함하지 않았다. 스위프트 결제망에서 배제되면 러시아 은행들이 달러를 기반으로 거래하는 세계 각국 금융기관들과의 거래가 사실상 끊겨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에도 지장이 발생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제재가 “언제나 한 가지 선택 사항이었지만 지금 당장은 유럽이 이를 취하기를 원하지는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우리가 부과한 이번 제재는 스위프트 이상의 것이다. 지금까지의 어떤 제재도 뛰어넘는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의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18%로 매우 낮고 외환보유고가 6430억달러(약 774조원)로 풍부하다는 점에서 이번 제재가 대단히 파괴적이지는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여전하다. 반도체 등은 중국이 대체 공급처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러시아가 행동을 바꿀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면 미국은 추가 제재를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직접 제재 가능성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엄포가 아니라, (앞으로 발동을 고려하는) 테이블 위에 있는 사항”이라고 답했다. 추가 제재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다.
러시아 크렘린궁의 드미트리 페스코프 대변인은 수입 의존도를 줄여왔기 때문에 제재에 따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서방에 보복 제재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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