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F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사태가 전쟁 일보 직전의 위기로까지 치달은 가운데 미국과 러시아 정상이 직접 회담해 타협을 시도한다는 데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미-러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러시아와 유럽의 상호 안보 우려를 놓고 본격적인 담판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20일 두차례 통화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조 바이든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이 정상회담 개최라는 원칙에 합의했다”고 21일 밝혔다. 엘리제궁은 마크롱 대통령이 미-러 정상회담을 제안했다면서, 회담은 “유럽의 전략적 안정과 안보”에 관련이 있는 이해 당사자들로도 확대될 것이라고 밝혔다. 엘리제궁은 또 24일 우크라이나 사태를 논의하려고 만나는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이 정상회담을 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다면 정상회담은 열릴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번 발표는 마크롱 대통령이 모스크바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을 만나고 거듭 통화하는 등 미-러 사이에서 끈질기게 추구한 중재 ‘셔틀 외교’의 한 성과로 볼 수 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도 엘리제궁 발표 뒤 “바이든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의 만남을 원칙적으로 수락했다”면서도 “침공이 개시되지 않는다면”이라는 단서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은 침공 개시 직전까지 외교를 추구하는 데 전념”하겠지만 “현재로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곧 전면적으로 공격하는 준비를 계속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마크롱 대통령과 회담 결과를 전하는 크레믈(러시아 대통령궁) 발표를 보면,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최근 소규모 무력충돌이 발생하는 책임을 우크라이나에 돌리면서 “미국과 나토는 안전 보장에 대한 러시아의 요구(나토의 동진 금지)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음을 알 수 있다. 크레믈 발표문엔 미-러 정상회담에 대한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미-러 정상이 재차 회담을 열기로 원칙적으로 합의한 사실이 우크라이나 사태가 진정되는 데 얼마나 효력이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먼저, 회담이 성사되려면 미국이 밝힌 대로 ‘전쟁이 나지 않는다’는 전제가 충족돼야 한다. 하지만 러시아는 정상회담 전까지는 전쟁을 하지 않겠다거나, 또는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지 않겠다고 언급하진 않았다. 나아가 회담이 열린다 해도 양쪽 입장에 별다른 변화가 없으면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 실제, 바이든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7일 우크라이나 문제 등을 놓고 처음 화상회담을 했고, 12월30일과 지난 12일에도 각각 전화회담을 했지만 서로의 입장 차이만 확인하는 데 그쳤다.
그럼에도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싼 4차 미-러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양쪽 모두에게 돌아갈 이득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 입장에선 미-러 외교장관 회담에 이어 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지 않는다면 적잖은 시간을 벌 수 있다. 그는 18일 러시아가 며칠 안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다. 푸틴 대통령으로서는 우크라이나를 고리로 제기한 자국의 안보 우려를 놓고 프랑스와 독일 정상을 모스크바로 불러들인 데 이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최대주주 격인 미국 정상과 담판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러나 최고 지도자들의 담판을 통해서도 위기를 해소하거나 최소한 장기적으로 유예하지 못한다면 정상회담이 파국의 진짜 기점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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