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백악관에서 만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AF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3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러시아가 침공한다면 “신속하고 단호하게” 대응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러시아가 이번주에라도 침공할 수 있다는 말을 퍼뜨려온 바이든 대통령은 “며칠 내로 방문해달라”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초대에 즉답을 피하는 어색한 상황이 연출됐다.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이 이번 통화에서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의 완전성에 대한 지지 약속을 재확인해줬”고 “러시아의 어떤 추가 공격에 대해서도 동맹 및 파트너들과 함께 신속하고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또 두 정상은 러시아군의 국경 지대 집결에 대해 외교적 해법을 계속 추구한다는 데 합의했다고 했다.
이번 통화는 바이든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통화한 이튿날 이뤄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에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가혹한 대가”를 안기겠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이 통화에서 상황 진정을 위한 계기는 마련되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과 다른 미국 관리들은 러시아군이 당장 침공할 수 있다며 신속하고 강경한 대응을 연일 강조하고 있다. 최근에는 16일이 침공 개시일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3일 <시엔엔>(CNN) 인터뷰에서도 러시아가 “올림픽(베이징 겨울올림픽)이 끝나기 전인 이번주를 포함해 지금부터 어느 때라도 대규모 군사행동에 나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을 초청했다고 우크라이나 정부가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당신이 며칠 내에 키예프(우크라이나 수도)에 온다면 매우 강력한 신호가 되고 상황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고 한다. 이달 들어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키예프를 방문해 위기 상황을 논의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14일 키예프에 이어 15일에는 모스크바를 방문해 긴장 해소를 위한 셔틀 외교에 나선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유럽 쪽 주요 정상들은 모두 우크라이나를 찾은 것이다.
그러나 백악관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미국 대통령 초청에 대한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초청 사실은 백악관 발표에도 빠져 있다. <시엔엔>은 바이든 대통령이 통화에서 긍정적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고 익명의 우크라이나 관리를 인용해 보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 쪽이 상황이 절박하니까 도움을 청하고 그 사실을 공개했을 수 있다. 하지만 누구보다 엄중한 경호 대상인 미국 대통령에게 며칠 안에 방문해달라고 요청한 사실을 곧장 공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상대국 정상이 동의하거나 긍정적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면 일반적 관례에도 어긋난다.
이런 모습은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라는 ‘공적’을 놓고 보여온 엇박자의 연장선일 수도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 등 우크라이나 지도자들은 미국이 위협을 너무 강조해 자국민들이 공포에 떨고 경제활동에도 부정적 영향을 준다며 ‘전쟁 임박설’을 부인해왔다. 지난달에는 바이든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러시아가 소규모로 도발하면 나토 내에서 대응 수위를 놓고 이견이 생길 수 있다고 하자, 젤렌스키 대통령이 트위터로 “강대국들은 소규모 공격이나 작은 국가들이란 없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고 반발하기도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에게 소소한 사상자나 작은 비탄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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