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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아이티 대통령 암살은 마약 거래 리스트 때문?

등록 2021-12-13 11:12수정 2021-12-13 11:38

‘뉴욕 타임스’, 모이즈 전 대통령 측근 등 취재
모이즈 아내 “암살자들, 거처 뒤져 서류 가져가”
모이즈, 2월 이후 마약·무기 밀매 단속 본격화
궁지 몰린 마약거래 연루 정치세력 보복 가능성
지난 7월 암살당한 조브엘 모이즈 전 아이티 대통령의 영결식이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국립묘지에서 열리고 있다. AP 연합뉴스
지난 7월 암살당한 조브엘 모이즈 전 아이티 대통령의 영결식이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국립묘지에서 열리고 있다. AP 연합뉴스
지난 7월7일 새벽 거처에서 암살당한 조브엘 모이즈 전 아이티 대통령은 유력 정치인과 사업가들이 포함된 마약 거래자 명단을 작성했다가 피살당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뉴욕 타임스>는 모이즈 전 대통령이 사망 전 마약 거래와 관련된 정치인들과 사업가들 명단을 만들어 미국 정부에 건네려 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12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모이즈 전 대통령 주변 인사들 및 수사 상황을 취재해 이렇게 전했다.

괴한들이 습격했을 때 역시 총격을 당했으나 피를 흘리면서 죽은 체해 목숨을 건진 모이즈 전 대통령의 아내 마르틴은 이 신문 인터뷰에서 괴한들이 방에서 서류를 뒤지면서 “이거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어떤 서류였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밝혔으나, 수사 당국은 이 서류가 마약 거래 관련자 명단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사건 직후 수사관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서류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고 한다.

모이즈 전 대통령은 앞서 자신의 정치적 후원자 등 신분을 막론하고 마약이나 무기 밀매 관련자들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세관 당국의 부패 문제 조사도 개시하고, 밀수 통로로 지목된 항국의 국유화에도 착수했다. 마약 거래상들이 이용해온 활주로를 폐쇄하고, 자금세탁 창구로 지목된 장어 무역업에 대한 조사도 지시했다. 아이티 정부 관계자들은 조사 대상 인물들 중 여럿은 모이즈 전 대통령이 수년간 알고 지낸 사람들이며, 이들은 대통령의 조처에 배신감을 느꼈다고 전했다. 지난달 사임한 미국의 대니얼 푸트 아이티 특사도 마약과 무기 밀매가 암살에 역할을 했을 것이라며 “아이티의 정치와 경제를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뉴욕 타임스>는 모이즈 전 대통령이 작성한 리스트에 사업가 샤를 생-레미가 주요 인물로 올라 있다고 했다. 2014년에 모이즈 전 대통령이 권력을 승계하도록 지원한 미셸 마르텔리 전 대통령의 인척인 생-레미는 미국 마약단속국이 주시해온 인물이다. 생-레미는 자신과도 직접 친분이 있는 모이즈 전 대통령 정부에서도 큰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모이즈 전 대통령의 한 측근은 대통령이 정부 계약부터 인사에까지 입김을 발휘하는 생-레미 등의 영향력에 압박을 느꼈다고 전했다. 모이즈 전 대통령은 마르텔리 전 대통령이나 생-레미의 동의 없이는 각료 한 명도 앉힐 수 없었다고 한다. 마르텔리 전 대통령이 입법 등과 관련해 현직이던 모이즈 전 대통령에게 호통을 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모이즈 전 대통령의 한 측근은 “진짜 지도자는 대통령이 아니었다”며 “그의 대부 마르텔리가 진짜 지도자였으며, 우리는 그 대부를 얘기할 때 이탈리아 식으로 ‘패밀리’라고 불렀다”고 했다.

모이즈 전 대통령 측근들은 그가 생-레미 등 권력과 유착된 재벌들을 두려워해 그들의 사업을 건드리지 않는 태도를 유지해왔다고 했다. 하지만 모이즈 전 대통령은 지난 2월 쿠데타 음모를 적발했다는 경호 책임자의 주장을 접한 뒤로 생-레미 등의 사업과 마약 밀매업에 대한 단속을 본격화했다. 가만있다가는 “그들이 날 죽일 것”이라며 선제적 대응에 나섰다는 것이다. 생-레미의 중국에 대한 장어 수출업은 돈세탁 수단이라는 의심을 받아왔다. 그는 과거에 마약 거래에 관여했으나 지금은 손을 뗐다고 주장한다.

주로 군인 출신인 콜롬비아인 26명과 아이티 출신 미국인 2명으로 이뤄진 암살범들은 사건 당일 미국 마약단속국 직원들이라며 대통령 경호원들을 속이고 거처에 침입했다. 모이즈 전 대통령은 주검에서 총탄 12발이 발견되고 한쪽 눈이 파내지는 등 참혹하게 살해당했다. 수사 당국은 사건 발생 전 아이티를 방문한 미국 거주 의사 등을 유력한 배후로 보고 수사하고 있으나 다섯 달이 지나도록 완전한 진상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모이즈 전 대통령이 마르텔리 전 대통령이 붙여놓은 감시원으로 의심한 경호 책임자도 암살 연루 의혹으로 구금된 상태다. 경호원들이 미국 마약단속국이라는 말에 순순히 경계를 풀고 암살범들에게 단 한 발의 총격도 가하지 않은 게 강한 의심을 샀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모이즈 전 대통령의 전임자인 마르텔리 전 대통령은 대선 출마를 고려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생-레미는 사건 발생 초기부터 의심을 받아왔다면서도, 단속 강화에 불만을 품은 다른 인물이 모이즈 전 대통령을 제거했을 개연성도 있다고 전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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