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욱 신세계아이앤씨(I&C) 대표가 26일 서울 강남구 구글 캠퍼스 서울에서 열린 ‘캠퍼스×커머스’ 행사에서 스타트업 기업가들에게 회사 소개를 하고 있다. 구글코리아 제공
“돈, 사람, 해야 할 일 모두 갖고 있다. … 그런데 뭘 하려고 해도 느리다. 혁신에 속도가 나지 않는다.” “가진 것이 많으니 위험을 피한다. 그래서 해결책을 밖에서 찾자고 정리했다.” “스타트업의 도움이 필요하다. 많이 도와달라고 하고 싶다.”
수십명의 스타트업 기업가들 앞에서 대기업 임원들의 고백이 이어졌다. 26일 오후 서울 강남구 ‘구글 캠퍼스 서울’에서 유통 주력 대기업과 스타트업 기업가, 투자가들이 모인 ‘캠퍼스×커머스(상거래)’가 열렸다. 130여석의 공간에는 빈자리가 거의 없었다. 유통업 환경의 빠른 변화를 좇는 대기업과, 변화를 이끌 서비스를 개발했지만 투자와 지원이 필요한 스타트업이 만난 자리의 열기는 뜨거웠다.
이 행사는 스타트업 기업가들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자리가 아니다. 스타트업과의 협업을 통한 혁신이 절실한 몇몇 대기업이 먼저 아이디어를 냈다. 임정민 구글캠퍼스 서울총괄은 “이번 행사는 몇달 전 기업 쪽의 요청이 있어 열게 됐다”고 말했다. 앞장선 기업은 신세계그룹의 정보통신 계열사인 신세계아이앤씨(I&C), 지에스(GS)홈쇼핑, 온라인 쇼핑 ‘11번가’ 등을 운영하는 에스케이(SK)플래닛이다. 여기에 스타트업 투자사인 소프트뱅크코리아도 함께했다. 신세계아이앤씨는 김장욱 대표가 직접 출동했다. 김 대표는 “‘대기업은 착취하고, 스타트업은 당하고’ 이렇게 생각해왔다면 이제는 다르다고 말하고 싶다. 필요하다면 우리는 여러분에게 고객 행동 데이터를 제공할 수도 있다. 그걸 바탕으로 여러분이 새로운 마케팅 의사 결정 도구를 개발할 수 있다. 이런 쌍방향 오픈 이노베이션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10개 스타트업 기업가들의 3분 스피치가 끝난 뒤 시작된 ‘네트워크 파티’에서 각 회사 관계자들은 관심 있는 스타트업 기업가에게 다가가 사업 내용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물었다. 몇몇 스타트업 기업가들은 파티가 끝날 즈음 준비한 명함까지 다 떨어졌을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애플리케이션 내 소비자 행동 분석 프로그램을 개발한 앤벗의 정현종 대표는 “서비스를 정식으로 내놓고 이런 행사에 처음 와서 기대는 있었지만 이 정도로 관심을 받을 줄 몰랐다. (대기업들이) 정말 적극적이다”라고 말했다. 박영훈 지에스홈쇼핑 미래사업본부 전무는 “우리가 가진 역량을 주고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스타트업에 투자하거나 협업할 때 항상 연애한다고 생각한다. 오래가려면 서로 주고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업종을 불문하고 대기업들이 혁신을 위해 함께할 스타트업을 적극적으로 찾고 있지만, 여전히 그 움직임이 글로벌 기업에 견줘 부족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임정민 총괄은 “숨은 진주를 찾으려 국내 대기업들도 많이 변하고 있지만 글로벌 기업들이 여전히 더 적극적이다. 그들 가운데 국내 스타트업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글로벌 기업 관계자들이 최근 한국을 많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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