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그러더군요. 결혼해서 애 없는 유부녀가 이직하거나 취업할 때 최악이라고요. 회사는 반기지 않을 수밖에 없다고. 여자들은 결혼 그 다음엔 아기, 이렇게 계속 발목잡혀야 하는 현실이 속상합니다.” 얼마전 한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 올라온 ‘결혼한 여자가 죄인가요’란 제목의 글이다.
나흘동안 달린 20여 개 댓글 중 절반은 “아직 미혼인데도 두렵다” 등 글쓴이에게 공감하는 내용이었지만 10여개의 댓글은 싸늘했다. “슬프기는 하나 육아휴직, 출산 휴가 때문에 공백이 생기니 어쩔 수 없다”, “나도 여자이긴 하나 결혼한 사람 꺼려진다”, “팀원 15명인데 3명 육아휴직, 진짜 죽는 줄 알았다” 등 휴직자의 업무 부담을 대신 져야 했던 경험에서 온 분노와 혐오가 육아휴직 당사자, 여성 직원을 향하고 있었다.
빈민촌은 사라지고 가난이 부자 동네 반지하로 숨어들었듯 직장 내 차별, 특히 여성 차별은 사라진 듯 보이지만 여전히 존재한다. 신입사원 중 여성 비율, 육아휴직 사용 비율, 여성 승진률 등 겉으로 드러나는 수치는 10여 년 전에 비해 대폭 개선됐지만 기업 정보 공유 플랫폼 ‘잡플래닛’에는 성차별, 남성 중심 문화, 유리천장(차별로 인한 보이지 않는 장벽)을 겪으며 일과 가정 사이에서 허덕이는 여성 직장인들의 사연이 이어진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는 자신의 책 <린 인>을 통해 이렇게 진단했다. “여성들은 경력을 쌓기 위해 일에 최대한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바로 그 시기에 생리학적으로는 자녀를 출산해야 한다. 배우자가 집안일과 육아를 분담하지 않아 여성은 풀타임 직업을 두 개 뛰는 셈인데 직장은 여성들이 가정에서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유연하게 대처할 만큼 진보하지 않았다.”
맞벌이 가정에서 남편의 가사노동 시간이 아내의 5분의 1인,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최하위 수준인 나라에서 여성 직장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좋은 일자리 프로젝트’는 국내 5대 그룹 대표사인 삼성전자, 엘지(LG)전자, 현대자동차, 에스케이(SK)텔레콤, 롯데쇼핑의 현실부터 짚어봤다.
■ 2016 지속가능보고서 분석해보니
5개 기업 중 7월말 현재 ‘2016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한 곳은 삼성전자, 엘지전자, 현대자동차다. 매출, 영업이익만이 아니라 윤리, 환경, 사회적 가치 등도 함께 고려하는 ‘지속가능경영’에 동참하겠다는 의지로 발간하는 이 보고서에서 차별 금지 등 ‘노동 인권’은 주요 축이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의 내용을 중심으로 주요 양성 평등 지표들을 비교해봤다.
여성 인력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롯데쇼핑(직원 2만6030명 중 여성 68%), 가장 낮은 곳은 현대차(직원 6만5614명 중 4.8%)였다. 지난해 희망퇴직을 실시했던 에스케이텔레콤의 경우 지난해 말 기준 전체 직원 4046명 중 여성이 13.4%(542명)로 전년보다 0.5% 감소했다. 지난해 신규 채용한 563명 중에도 여성은 25%(142명)에 그쳤다.
삼성전자의 여성 인력 비율은 사원급이 53.1%, 간부급이 12.4%, 임원급이 4.5% 수준이다. 2013년에 비해 사원과 임원급의 여성 비율이 상승했지만 간부급 여성 비율은 거의 변동이 없었다. 여성 인력은 58%가 제조 분야에 몰려있고 29%가 영업·마케팅, 17%가 개발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엘지전자는 직원 3만7094명 중 여성이 15.7%, 임원 250명 중 여성은 1명뿐이다. 여성 비율이 높은 롯데쇼핑의 경우에도 지난해 말 기준 미등기 임원 177명 중 여성 임원은 7명(4%)뿐이어서 에스케이텔레콤(4.26%)보다 낮다. 현대차의 국내 여성 임원 수는 2013년 1명에서 지난해 3명으로 늘어 0.35%에 불과하다.
관리자급 여성 비율을 높이려는 노력은 롯데쇼핑이 가장 적극적이다. 지난해 말 신동빈 회장은 “2020년까지 간부 사원의 30%를 여성으로 채우고 신입 공채 사원의 40%를 여성으로 뽑겠다”고 밝혔다. 2005년 5%에 불과했던 신입 공채 여성 비율은 10년 만에 40%로 늘었고 과장급 이상 여성 비율도 1%에서 11%까지 늘어났다.
여성 직원의 근속연수는 현대차가 11.6년으로 가장 길었고 에스케이텔레콤이 9.9년, 삼성전자 8.5년, 엘지전자 7.3년 순이었다. 롯데쇼핑의 경우 롯데백화점(9.9년)이 가장 길었고 롯데슈퍼·롯데시네마 등 기타 사업부가 4년으로 가장 짧아 평균 6.2년이었다.
남녀 임금 격차가 가장 큰 곳은 롯데쇼핑이었다. 지난해 롯데백화점 남성 직원 평균 연봉이 8150만원, 여성은 3730만원이었고 롯데마트 남성 직원 평균 연봉이 4970만원, 여성 2490만원으로 여성이 남성의 절반 수준이었다. 삼성전자와 에스케이텔레콤의 경우 남성 평균 연봉은 각각 1억900만원과 1억500만원이었지만 여성 평균 연봉은 8500만원, 7300만원이었다. 엘지전자는 남성이 7500만원, 여성이 5000만원이었고 현대차는 남성 9700만원, 여성 7400만원이었다.
육아휴직은 5개 그룹에서 모두 최근 2~3년새 늘어나는 추세였고 남성 직원의 육아휴직이 시작된 곳도 있었다. 엘지전자에서 지난해 육아휴직을 사용한 여성 직원은 661명, 남성은 59명이다. 2년 전에 비해 남성 육아휴직자 숫자가 2배 늘었다. 다만 휴직을 마치고 업무 복귀 뒤 12개월 이상 근무한 비율은 여성이 87%, 남성이 72%에 불과했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육아휴직자 수는 3816명이며 휴직 후 복귀율은 93.3%다. 2013년까지만 해도 1985명이었던 여성 육아휴직자 숫자는 2014년 3376명으로 크게 늘었다. 현대차의 육아휴직자 수는 여성 176명, 남성 34명으로 기업 규모에 비해 적은 숫자다.
삼성전자는 현재 전국 12개 어린이집을 운영하며 2551명의 아이를 돌보고 있다. 에스케이텔레콤의 경우 사내 어린이집 정원이 60명이어서 평균 경쟁률이 3:1 수준이다. 아직까지 대기업조차 사내 어린이집 ‘수용률’이 높지 않아 원하는 직원이라면 누구나 아이를 직장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직장 내 차별’ 발생 시 소통 창구가 되는 노조 조직률의 경우 에스케이텔레콤 85%, 현대차 71.4%, 엘지전자 20.4%, 롯데쇼핑 9.2%, 삼성전자 0% 순이었다.(지속가능보고서, 블룸버그 데이터 기준)
■ 여성 직원 평가 1321건 보니…
기업 정보 공유 플랫폼 ‘잡플래닛’에 5대 그룹 대표사 여성 직원들이 남긴 1321건의 평가를 분석한 결과 총 만족도는 현대차(5점 만점에 3.82점), 에스케이텔레콤(3.72), 삼성전자(3.48), 엘지전자(3.05), 롯데쇼핑(2.62) 순이었다. 하지만 ‘업무와 삶의 균형’ 점수는 에스케이텔레콤(3.4)과 현대차(3.18)만 3점을 넘었고 엘지전자(2.8), 삼성전자(2.41), 롯데쇼핑(2.11)이 2점 대로 낮았다.
현대차 여성 직원들은 글로벌 기업, 높은 연봉과 안정성 등에 자부심을 드러낸 반면 ‘군대식 문화’, ‘남성 중심 문화’에 대한 불만이 높았다. “군대문화, 여자가 너무 적어서 살아남기가 아주 힘듦. 체력적으로 강해야 함”, “남성적인 마초문화 개선이 필요함” 등의 평가가 이어졌다.
직장 내 ‘유리천장’ 언급이 많았던 기업은 에스케이텔레콤과 롯데쇼핑이었다. 에스케이텔레콤의 경우 보고서, 회의, 야근이 많다는 지적이 반복됐고 “남성위주 기업, 여성들 복지가 좋긴 하나 유리천장은 동급 최강으로 보인다”는 등 ‘보이지 않는 차별’을 지적하는 평가가 많았다.
삼성전자의 경우 복지제도 등 각종 정책은 우수하나 “상사의 대부분이 남자이고 여성 직원을 싫어하며 인사고과에 불이익이 많다” 등 차별 호소가 이어졌다. 620여 건의 여직원 평가 중에는 임금과 복지 수준을 장점으로 지목하고도 고된 야근 등으로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기 힘들다는 의견이 많았다.
엘지전자 여성 직원들은 야근, 주말 근무, 수직적 의사 결정 구조와 함께 여성 임원이 적어 ‘롤모델’이 없다고 지적했다. “주말까지 출근하게 하는 직원 혹사 정책”, “여성 롤모델이 부족한 상황인데 여성인력을 키우겠다는 비전은 보이지 않는다. 35살만 넘어도 애 키우다 퇴사하기 부지기수” 등의 평가가 이어졌다.
김영옥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굴지 대기업의 직장 내 차별 수준을 평가해보니 평균치가 5점 만점에 중간 수준으로 기업 위상을 고려할 때 실망스러운 수준”이라고 말했다. 임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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