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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직장·취업

판매가 50% 임금으로…빈민 여성 돕는 ‘슬로 패션’

등록 2015-01-18 20:17수정 2015-01-18 20:18

[‘청년 아시아’ 발언대]
필리핀 사회적기업 ‘래그스투리치스’ 대표 리스 페르난데스 루이스
래그스투리치스(Rags2Riches)는 가난한 수공예 노동자들이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슬로패션’ 사회적기업이다. 처음 사업을 시작한 곳은 필리핀 빈곤의 상징이라 불리는 파야타스(Payatas) 마을이다. 이곳 마을 주민 대다수는 쓰레기 매립장을 기반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여성들은 직물 공장에서 내버린 조각천을 주워 수공예 러그(깔개)를 짜서 팔았다. 하지만 중간상이 개입하면서 수익이 급격히 나빠졌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조각천을 사들인 중간상들이 턱없이 낮은 임금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러그 하나당 여성 노동자가 받는 품삯은 9페소, 우리돈으로 200원에 불과했다. 그나마 일당을 받지 못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내가 이 마을과 인연을 맺은 건 2007년 대학생 때다. 대학 수업 활동으로 친구들과 마을을 찾았다가 이처럼 열악하고 부당한 노동환경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마을 여성들 스스로 러그를 내다팔 판로를 갖지 못한 게 문제라고 봤다. 유통 채널을 개발하는 한편 시장에서 통할 트렌드도 제품에 반영하기로 했다. 대학 캠퍼스에서 이뤄진 첫 시장 테스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두 시간도 채 안 돼 준비한 제품 100여개가 모두 팔렸다. 자신감을 얻은 우리는 지역 여성 노동자를 추가 모집해 본격적으로 시장에 진출했다. 그러던 어느날 필리핀의 유명 디자이너한테서 연락이 왔다. 우리 제품에 영감을 받았다며 함께 작업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는 직접 마을을 방문해 러그 외에 가방과 액세서리 등 다양한 연계 상품도 디자인했다. 유명 디자이너와 협력해 생산한 제품(컬래버레이션)을 처음 출시한 것이다. 그 후 우리는 매년 윤리적이고 친환경적인 슬로패션 가치에 동참을 원하는 필리핀 디자이너들과 함께 작업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디자이너들의 프로보노(재능기부)는 우리 제품이 세련된 디자인과 좋은 품질로 거듭나도록 돕고 있다. 최근에는 글로벌 유통회사인 앤스로폴로지를 통해 미국과 유럽 시장에 진출하고 인터넷 쇼핑몰도 열었다.

현재 래그스투리치스는 필리핀의 25개 마을 공동체에서 500여명의 여성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우리는 임금 기준을 ‘소매가의 최소 50%’로 책정하는 등 노동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여성 노동자들에게 재무설계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가정의 재정 상황을 파악해 생애주기별로 관리하는 방법도 알려준다.

우리의 가장 큰 과제는 ‘어떻게 누구에게 팔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다. 디자이너와 유통회사 등 협력 파트너를 비롯해 여성 노동자들과 지속적으로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들의 신뢰를 얻는 게 중요하다. 많은 대화의 기회를 만들어 상호 신뢰를 높이고 있다. 생산자 수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대량생산과 아웃소싱을 금지한 원칙 또한 엄격하게 지키고 있다.

리스 페르난데스 루이스 필리핀 사회적기업 ‘래그스투리치스’ 대표
리스 페르난데스 루이스 필리핀 사회적기업 ‘래그스투리치스’ 대표
최신 디자인 트렌드를 즉각 반영한 제품을 저렴하게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패스트패션’ 산업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소비자들의 구매욕을 자극하는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많은 의류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에 놓여 있다. 래그스투리치스가 지향하는 슬로패션의 가치에 동참하는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리스 페르난데스 루이스 필리핀 사회적기업 ‘래그스투리치스’ 대표

‘청년 아시아’ 발언대는 한겨레경제연구소·씨닷 공동기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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