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희(왼쪽)씨는 정규직, 정복숙씨는 무기계약직이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7일 오후 서울 양천구 홈플러스 목동점 농산물 매대에서 직원이 상품을 정리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이 규정은 2003년 사라졌다
2001년 입사한 황씨는 정규직
2003년 입사한 정씨는
지금 무기계약직 신분이다 지난달 29일 목동점 1층 식당가에서 함께 만난 두 사람은 “이렇게 같이 앉아 이야기를 나눈 게 한달 만”이라고 말했다. 임금 체계가 바뀌면서 정규직과 무기계약직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섰다. 정씨는 “꼭 돈 문제 뿐이 아니라, 자존심이 너무 상하더라구요”라고 말했다. 황씨는 “(무기계약직인) 언니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래서 피하게 돼요”라고 말했다. 둘이 엇갈린 이유는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3년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급증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하던 때였다. 당시 두 사람이 몸 담고 있던 회사는 지금 홈플러스의 전신인 프랑스계 세계적 유통업체 ‘까르푸’였다. 까르푸는 계약직으로 고용한 뒤 1년 넘게 근무하면 조건없이 정규직으로 전환하던 기존의 고용 방식을 그해 6월에 바꿔 시험을 치러 소수에게만 정규직의 탑승표를 나눠졌다. 2001년 6월 입사했던 황씨는 이미 정규직 열차에 오른 뒤였지만, 인력업체 파견 형식으로 일하다가 2003년 10월에야 까르푸에 입사했던 정씨는 그 기차를 놓쳤다. 두 사람은 최근 임금 격차가 도드라지기 전, 오랜 노동조합 투쟁을 같이 해온 ‘동지’였다. 2006년 까르푸에서 이랜드그룹으로 넘어간 그들의 점포에는 ‘홈에버’라는 새로운 간판이 붙었다. 2007년 비정규직보호법 시행을 앞두고 홈에버는 계산업무를 외주화하려고 비정규 노동자를 무더기 해고했다. 새 법의 규정을 피해보려 한 꼼수였다. 이랜드 일반노동조합(당시 위원장 김경욱)은 파업에 돌입했다. 파업은 무려 500일 넘게 이어졌다. 당시 노조의 목동점 분회장을 맡았던 황씨는 “너무 힘들었다. 특히 아이와 가정에 소홀했던 게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정씨는 “1년6개월까지 (파업에) 함께 하다가 나왔는데 끝까지 함께 못했다”며 아직도 그때 일이 미안하다고 한다. 장기 파업은 새로 회사를 인수한 삼성테스코(홈플러스)가 노조와 2008년 11월 노사합의를 이룬 뒤에야 끝났다. 당시 파업은 사내 외주화를 막고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이뤄내며 한 걸음 진전된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정씨는 “차별에 대해서 함께 싸웠는데, 갈수록 격차만 벌어지니 요즘은 그때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넌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구조조정때 ‘동지’였던 그들은
이제 ‘불편한 동료’가 됐다
최근 정규직만 월급이 올랐고
황씨는 “미안해서 피한다”
정씨는 “가슴 아플 뿐이다” 미안한 마음이 앞서지만 정규직 노동자라고 할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황씨는 “2008년 파업 종료 뒤 2년 동안은 합의에 따라 임금인상률을 회사에 맡겼어요. 2% 수준이었죠. 이번에야 노조와 회사가 협의를 해서 올린 것인데 노조 입장에서 (정규직 임금 인상을) 받아들이지 않긴 어려웠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홈플러스 점포들은 소속이 두 회사로 나눠져 있는데, 홈에버가 전신인 점포의 경우 무기계약직 비율이 3분의 1 수준이다. 하지만 옛 삼성테스코 계열 점포의 경우 무기계약직 비율이 훨씬 높아 전체적으로는 절반 수준으로 추정된다. 정씨와 황씨 두 사람의 바람은 같다. 정씨는 “동생들이 무슨 죄가 있겠어요. 서로 피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 아플 뿐이죠. 회사와 이야기 해야지”라고 말했다. 1995년 남편의 사업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친구의 동네 마트에서부터 일을 시작해 지금까지 이 일로 딸과 아들을 키운 정씨는 “힘 닿는 데까지는 계속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황씨는 “우리 일은 누가 정규직이고 누가 비정규직인지 구분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구분을 줄이고 (인력) 운영을 단순하게 해야 될텐데 회사가 점점 격차를 벌여 놓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는 나아가 사회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모두 어렵다 보니 안정된 직장만 찾고 자녀에게 똑같은 일을 하길 바라죠. 그런 고정된 생각에 갇혀 있는 한 차별의 구조는 바뀌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한겨레>는 다양한 노동현장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모습과 사연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찍은 사진이나 사연을 페이스북 계정(www.facebook.com/hankyoreh), 사진부 전자우편(photo@hani.co.kr)으로 보내주십시오.
고용부가 “정규직 전환하겠다”는 4만여명
사실은 ‘중규직’ 될 처지 정복숙(59)씨와 황명희(48)씨 사례처럼 정규직과 무기계약직의 격차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시행으로부터 6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전문가들은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의 일종이 아니라 변형된 비정규직으로 보고 새 틀의 노동 정책을 짜는 전환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기간제법이 시행에 들어간 2007년 7월을 앞뒤로 무기계약직은 크게 늘었다. 홈플러스의 전신인 이랜드그룹 ‘홈에버’의 해고 노동자 출신이기도 한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다음 계약에 대한 불안으로 떨어야 했던 2007년에는 무기계약직 도입이 의미가 있었다. 지금은 신분에 따른 차별시정에 초점을 맞춘 진짜 정규직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무기계약직은 고용 기간의 제한이 없다는 점에서 정규직과 같지만, 기한 제한만 걷어냈을 뿐 임금과 복지에선 사업장과 고용 형태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홈플러스 경우처럼 두 직군 사이의 차이는 점차 두드러지고 있다. 무기계약직을 처음 도입한 것은 정부다. 윤애림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법학)은 “2006년 비정규직 문제가 심화되자 정부는 2년 이상 상시적인 업무를 해온 공공부문의 비정규직을 무기계약직화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이를 두고 정규직화라고 포장했다”고 말했다. 이후 우리은행, 홈플러스 등 금융과 유통 등의 민간기업들이 대열에 동참했다. 노동계에선 이를 두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중간인) ‘중규직’ 계급을 양산하는 ‘반쪽 정규직화’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이는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4월 2015년까지 4만1000명 이상을 정규직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모두 무기계약직 전환이다. 윤 교수는 “무기계약직은 실적 등을 들어 언제든 잘릴 위험이 있기 때문에 안정성이 보장된다고 하기도 어렵지만, 기한 제한이 없기 때문에 기간제법 대상도 아니라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도입한 정부에서 나서서 공공기관부터 진짜 정규직 전환 고민을 시작할 때”라고 말했다. 민간에선 대기업이 앞장서야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남신 소장은 “재벌 기업들은 그 동안 비정규직을 통해 큰 부를 쌓아왔다. 줄 돈도 없는 중소기업에게 당장 정규직 전환을 주문하긴 어렵더라도, 대기업들은 사회적 책임 등의 관점에서 진짜 정규직화에 나설 필요가 있다. 노동자 생산성 향상 측면에서도 기업에 이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권오성 기자 <한겨레 인기기사>
■ 전두환 셋째아들 ‘결혼 축의금’이 무려 160억!
■ 애들은 가라, 장안의 청춘남녀 바글바글…클럽같은 ‘19금’ 물놀이
■ 부르카 여전사 “각오해! 지구촌 나쁜 남자들”
■ [화보] 낙동강 버드나무들의 떼죽음…생명력 잃은 4대강
■ 홈플러스 매장의 두 여직원…비정규직은 누구일까요?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