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 ‘내부 CEO’ 육성 프로그램 절실
P&G 이미 ‘내부승계 시스템’
후보군 전담팀…6명 주시중
국내기업은 아직
“교육시키지만 양성 아냐”
KB 등 연거푸 외부인사 입성
“직원들 회장 되겠단 생각 힘들어”
재벌문화도 장애
스타직원은 총수 광채 가리니…
경제환경 변화로
총수가 모든 계열사
CEO 맡기 현실적 불가능
“승계계획 사전 공식화 필요” 세제와 생활용품 등을 만드는 세계적인 소비재 기업 프록터앤갬블(P&G)의 최고경영자(CEO) 앨런 조지 래플리는 지난 5월 새로 선임되자마자 차기 시이오를 찾는 일부터 시작했다. 래플리 회장은 주요 부서의 임원 4명의 실적을 보고받았고, 다른 임원 2명도 주시하고 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은 최근 전했다. 66살의 래플리 회장은 선임 뒤 자신이 맡은 중요한 역할을 다음 시이오를 찾는 것으로 삼은 셈이다. 피앤지가 이미 차기 시이오 후보군을 위한 전담팀 운영 등 내부 승계 시스템을 갖췄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국내 기업도 내부에서 키워진 시이오가 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겨레>와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국내 매출액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4월부터 두달 동안 조사한 결과를 보면, 기업 내부에서 크고 발탁된 시이오가 2012년에 견줘 10%가량 증가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일단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했다. 김 소장은 “공기업 등 대부분의 기업이 3월에 주총을 끝냈기 때문에 이런 결과는 한국 사회가 어떤 변화를 보여주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 지난 정권에 견줘 박근혜 정부에서 정치권과 관련된 사람들이 기업의 시이오나 주요 임원으로 내려가는 경우가 아직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인사컨설팅 업체인 타워스왓슨코리아의 김기령 대표는 국내 기업도 세계적인 경영 흐름을 좇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내부에서 시이오가 나오는 게 기업 문화와 직원 사기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이 때문에 세계적으로 많은 기업들에서 내부 육성 시이오가 증가하는 추세”라고 했다. 이런 추세에도 불구하고 국내 기업에선 당장 변화가 일어나는 것 같지는 않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계열사 시이오 후보가 될 임원들을 교육하고는 있지만, 후보자를 경쟁시켜서 선별하는 과정은 아니”라고 했다. 엘지(LG)그룹도 시이오 후보군 100여명을 선발해 사업 전반에 걸친 경험을 위한 직무 순환 등을 진행하는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포스코는 부사장·전무급을 기업 내 인재창조원 전략대학에 보내 리더십 교육 등을 시키지만, 대상자가 따로 선발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대기업 비서실 등에서 근무한 한 직원은 “시이오 후보군을 별도로 평가하는 시스템은 국내 기업에선 없다고 봐야 한다. 부사장까지 오른 이들은 이미 역량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을 둘러싼 환경도 시이오를 내부에서 육성하는 시스템을 정착시키는 데 걸림돌이다. 정부가 주식을 한주도 갖고 있지 않는 민간 기업인 케이비(KB)금융지주는 최근 어윤대 전 회장이 물러난 뒤 금융관료 출신의 임영록 사장을 새 회장으로 맞았다. 국민은행장도 논란 끝에 결국 외부 출신인 이건호 행장으로 선임됐다. 국민은행 노조 관계자는 “외부에서 온 인사들이 연거푸 회장에 선임되니, 이런 상황에선 후계자를 안정적으로 내부 육성할 시스템을 만들 필요도, 의지도 없어지게 된다”고 했다. 그는 “직원들 역시 나중에 회장이나 사장이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기 힘들어진다”고 덧붙였다. 총수가 군림하는 재벌 문화 역시 훌륭한 내부 육성 시이오를 키워내는 것엔 관심을 가지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스타급 직원’ 시이오는 총수 2·3세로의 후계 구도에서 가족 리더십의 ‘빛’을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재벌 문제를 연구해온 김상조 소장은 “재벌 대기업의 시이오는 총수 의사대로 결정되는 게 현실이다. 시이오 선임 과정도 완전히 커튼에 가려져 있어 누가 어떻게 됐는지, 성과가 중요한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반면 시이오를 체계적으로 육성해야 할 필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현재 국내 기업은 상법상의 규제 강화로 재벌 총수가 모든 계열사들의 시이오를 맡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 계열 기업의 규모도 커져 전문 경영인의 역할과 책임도 함께 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 ‘잡스의 죽음을 통해 본 위기관리 경영’은 “1960~1970년대 고도성장을 견인한 1세대 경영자가 고령화”되고 있다며 “핵심 보직의 승계 문제가 주요 경영 현안으로 등장”하고 있다고 했다. 시이오를 체계적으로 육성하는 데 필요한 핵심 요소는 공개와 경쟁이다. 배성오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조선왕조가 대리청정을 통해 왕세자의 자질을 검증한 것을 예로 들며 “창업자 2·3세를 포함해 우수 인재를 대상으로 한 시이오 승계 계획을 사전에 공식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경영능력 검증과 직무역량을 강화할 기회를 갖자는 것이다. 가업을 승계받아 기업 발전에 도움이 될지, 경영을 훨씬 잘할 수 있는 사람에게 경영권을 넘겨 더 많은 재산을 다음 세대에 넘기는 게 현명할지 판단하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국내 재벌 그룹 후계자들은 새 사업에 도전하기보다 핵심 부서를 거쳐 고속 승진하는 길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의 대기업 제너럴 일렉트릭(GE)은 반대로 시이오 후보군에게 의도적으로 시련을 준다. 시이오 리더십 분야의 권위자인 라케시 쿠라나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도 올해 초 <매일경제> 인터뷰에서 시이오 승계는 이벤트가 아니라 과정이라고 했다. 그는 “좋은 리더 한명을 육성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리더 여러 명을 키우는 과정이어야 한다. 이사진은 경영진과 주주를 위해서가 아니라 기업 미래에 로열티를 가지고 시이오를 뽑아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단순히 시이오 후계자를 만드는 게 아니라 주요 보직에 대한 후계 계획을 세워 후보군을 강화하는 ‘리더십 파이프라인’도 필요하다. 물론 시이오를 기업 내부에서 육성하는 것만이 정답일 순 없다. 김기령 타워스왓슨코리아 대표는 “조직에 건전한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이오를 내부에서 육성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나, 적절한 후보가 없는 경우 외부에서 영입한다는 식으로 구성하는 게 선진 사례”라고 말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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