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규모 광고대행사 크레모아
“제대로 충전하는 느낌”
직원들 ‘뭐할까’ 행복한 고민
업무 차질도 눈에 띄지 않아
“제대로 충전하는 느낌”
직원들 ‘뭐할까’ 행복한 고민
업무 차질도 눈에 띄지 않아
직장에서 3주 유급휴가를 준다면 무엇을 할까.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대체휴가제 시행도 어렵고, 있는 연차도 제대로 못 쓰는데 무슨 이야기냐고?’ 하지만 이런 고민을 해마다 해야 하는 ‘행복한’ 직장인도 있다.
광고대행사인 크레모아커뮤니케이션즈(이하 크레모아)에 다니는 송민정(28)씨는 지난 3월 어머니와 함께 여행을 다녀왔다. 강원도 동해에서 경북 영덕까지 7번 국도를 타고 내려간 추억여행이었다. “어머니가 젊었을 때 여행한 곳을 일주일 동안 다시 여행했어요. 여행중에 친구처럼 싸우기도 하고, 더 많이 가까워졌죠.”
송씨는 1주일은 어머니와 함께 여행을 다녔고, 1주일은 고향에서 쉬었고, 또 1주일은 서울에 올라와 놀았다. 송씨는 “회사에 돌아오니 피부가 좋아졌다고 다들 말했어요”라며 웃었다. 송씨는 내년에는 국외여행을 나가볼까 벌써 기대하고 있다.
평범한 직장인 송씨가 여행을 꿈꾸며 살 수 있게 된 것은 올해 초 노영훈 크레모아 대표의 깜짝 발표 때문이었다. “모든 직원에게 매해 3주간의 안식휴가를 주겠다.” 예건해 영업전략부장은 “직원들도 모두 깜짝 놀랐죠. 하하하. 그날부터 바로 희망자 받아서 출발시켰다”고 웃었다. 온라인 광고 대행 등을 하는 회사로 연매출 200억원 수준의 중소기업이지만 파격적인 휴가제도를 만든 것이다.
예 부장은 “광고회사이다 보니 야근도 많고 주말 근무도 많았다.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하고, 아이디어의 한계를 느끼는 직원도 있었다”고 안식휴가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그는 “실현 불가능한 것을 하자는 게 아니라 업무에 복귀했을 때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을 해보자고 했다”고 덧붙였다. 40여명의 회사 직원 가운데 4월까지 안식휴가를 쓴 이는 벌써 10명에 이른다.
시행 초기지만 효과는 긍정적이다. 안식휴가로 인한 업무 차질은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한다. 다른 광고대행사에 견줘 임금이 높지도 않지만, 이직이 많은 광고업계에서도 낮은 이직률을 자랑한다. 안식휴가 도입뿐만 아니라 ‘놀고 오는’ 국외워크숍 등이 직원들의 유대감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직원들의 반응은 당연히 좋다. ‘일중독’에 가까웠던 안동원 부장은 4월 안식휴가를 다녀온 뒤 바뀌었다. 회사 설립 초창기 때 들어온 안 부장은 1주일 이상 휴가를 써본 적도 없고, ‘우리 팀 일은 내가 다 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다고 한다. 안식휴가 도입을 결정할 때도 차라리 연차를 늘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3주 휴가 뒤 그는 “내가 없이도 팀이 잘하는구나. 아래에 위임해도 되는구나. 야근해야 잘되는 건 아니구나 하는 배려가 생겼다”고 말한다. 예건해 부장도 “안식휴가로 쉬고 온 직원 가운데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는구나’라는 걸 느꼈다는 이도 있다”고 귀띔했다. 휴식이 자신의 일과 회사, 주변을 돌아보게 한 것이다. 송민정씨도 “일로 방전된 몸을 주말에 쉬는 게 잠깐 전기충격을 주는 것이라면, 안식휴가는 제대로 충전하는 느낌이었다”고 말한다.
크레모아 사례는 국내 노동자의 최장 근로시간을 줄일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이다. 2010년 한국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멕시코(2242시간)를 제외하고 가장 긴 2193시간에 이른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1775시간)보다 23.5%나 많다.
세계적인 인사·조직 컨설팅 기업인 타워스왓슨이 2012년 전세계 기업 1605곳을 조사해 내놓은 결과도 비슷하다. ‘우리 직원들은 지난 3년간 휴가 일수를 적게 사용하였거나 개인적인 휴식시간을 적게 가졌다’라고 물었을 때, 한국 기업의 경우 78%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전세계 평균(29%)보다 훨씬 높다. 그만큼 휴가가 없다는 얘기다. 한광모 타워스왓슨 상무는 “한국 직장인들은 과도한 업무시간 때문에 스트레스가 축적된 상황인데, 안식휴가 등의 장기 휴가가 있다면 이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 가운데 안식휴가가 있는 곳은 많지 않다. ‘카카오톡’으로 유명한 카카오는 5년을 근속할 때마다 3개월의 유급휴가를 준다. ‘지마켓’을 운영하는 이베이코리아는 5년 근속 때 한 달의 휴가를, 온라인게임 업체인 넥슨은 직장생활 3·6년차에는 각각 10일, 9년차에는 20일의 휴가를 주는 게 대표적인 경우다. 에스케이텔레콤은 10년 근속 때 45일의 휴가를 준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등 국내 대기업들은 10년 이상 근무하면 3~5일 정도의 장기근속휴가를 주는 데 그친다. 한 대기업 직원은 “신입사원 때 팀에서 매년 한명씩 15일간 보내주는 휴가도 있었지만, 외환위기를 거치며 없어졌다”고 했다. 한광모 상무는 “업무 강도가 과중한 상황에서 장기 휴가는 (휴식을 통해) 생산성에도 도움이 된다. 최근 대기업이 장기 휴가를 권장하고 있지만, 제도뿐만 아니라 경영진도 (직원이 휴가를 쓸 수 있도록) 시각을 전환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사진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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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간 안식휴가를 다녀온 송민정(왼쪽), 안동원씨가 서울 논현동 크레모아커뮤니케이션즈 회의실에서 있다. 크레모아커뮤니케이션즈는 올해 초 전 직원을 대상으로 3주 유급 안식휴가를 도입해, 안동원씨 등 10명이 재충전의 기회를 가졌다. 이들에게 ‘나에게 리프레시 휴가란?’이라고 묻자, 송민정씨가 회의실 벽에 ‘상쾌한 충전’이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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