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문화 여행기획가 고제량(오른쪽 둘째)씨와 여행자들의 나뭇잎 배 만들기. 이야기 제주 제공
‘이야기제주’ 여행상품, 경비 1% 숲 보전기금으로
주민 펜션·지역 농산물 식당·자연 활용 ‘착한여행’
주민 펜션·지역 농산물 식당·자연 활용 ‘착한여행’
[세상을 바꾸는 직업] ⑧ 생태문화 여행기획가
공무원들이 제주도로 1박2일 연수를 갔다. 고제량(45)씨가 여행 기획을 맡았다. 숙소는 마을 주민이 운영하는 펜션으로, 세미나실은 마을 문화의집으로 정했다. 밥은 지역 농산물로 만든 마을 작은 식당에서 먹는다. 쇼핑은 이웃 재래시장에서 제주 농부들한테 직접 산다. 그리고 한라산 습지와 오름, 해안가를 걸으며 자연을 즐긴다. 일회용 제품은 전혀 쓰지 않고 여행경비의 1%를 제주도의 숲 ‘곶자왈’을 보전하는 기금으로 낸다.
역사문화기행 전문여행사 ‘이야기 제주’의 대표인 고씨가 사례로 든 ‘생태문화 여행’이다. 제주도에서 태어난 고씨는 제주대학에서 환경학을 공부하고 스물일곱살에 결혼했다. 결혼과 함께 직장생활을 접었던 그는 큰아이가 여덟살, 작은아이가 다섯살 무렵 사회로 다시 나왔다. 오름 동호회에서 오름을 다니며 여행사를 만들었고 그때부터 ‘대안 여행’을 고민했다.
“제주도의 지역총생산액 약 9조 중에 25% 정도가 관광수입이에요. 그런데 그 관광수입의 80%가 개발업자에게 돌아간다고 합니다. 그것도 제주도 환경을 엄청나게 파괴하면서….”
고씨는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면서도 지역문화를 존중하고 환경을 보전하는 관광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그리고 제주도내 환경운동단체인 제주참여환경연대에서 생태 해설가를 양성하는 교육을 받으면서 그 꿈을 펼치기 시작했다. 2003년 30대 후반의 남녀 5명이 생태문화여행 기획가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이다. 처음에는 전문가단체나 대안학교 정도가 여행 기획을 맡겼는데, 요즘은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회사연수나 수학여행, 가족여행까지도 생태관광으로 즐긴다. 최근 사회적기업으로 인증받으면서 직원도 14명으로 늘었다. 그러나 고씨는 “큰돈을 벌지 못한다”고 말했다.
“여행사가 하듯 숙박비나 식비에서 수수료를 받지 않아요. 대신 전체 경비의 10%를 생태여행 기획비로 책정하고 해설가로 일하면 일당 10만원을 받는 게 다죠.” 그래서 고씨의 월급은 들쑥날쑥하고 100만원 남짓일 때도 있다.
고씨는 왜 여행 기획가를 선택했을까? “제주도를 여러 번 다녀갔지만, 이번에야 제주도를 진짜 본 것 같다고 여행자들이 말할 때 큰 보람을 느끼죠. 여행이라는 소비문화를 나눔의 문화로 바꾼다는 자부심도 있고요.”
고씨는 여행 기획가의 첫째 자질로 지역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꼽았다. 고씨가 여행 기획가로 나선 것도 그렇게 떠나고 싶었던 섬이 어느날 가슴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한라산이 어느날 선명하게 보이는데요. 저 산이 나에게 말을 한다는 느낌이 들어 가슴이 뭉클했어요. 큰 도시만 바라보다가 어느날 제주도라는 자연이 눈에 들어온 거죠”
그 아름다운 자연을 고스란히 지켜내기 위해 고씨는 오늘도 착한 여행을 떠난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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