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라·산업인력공단, 국외진출 중기에 퇴직자 연결해줘
국제감각 인력우대…채용장려금 포함 월급 250만원대
국제감각 인력우대…채용장려금 포함 월급 250만원대
김영근(49)씨는 지난 1985년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뒤 25년간 쉬지 않고 달려왔지만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고비 때마다 찾아온 실직 때문이었다. 김씨는 미국 컴퓨터제조업체 휼렛패커드(HP)에서 15년간 영업·마케팅 일을 했다. 특히 95년부터 3년간 아시아·태평양 마케팅센터가 있는 홍콩에서 생활하며 국제감각을 익혔다. 영어로 꿈을 꿀 정도로 미친 듯이 일했지만, 외환위기가 닥쳤고 그는 99년 회사를 떠나야 했다.
외국계 소프트웨어 업체로 자리를 옮겨 삼성 등 국내 대기업을 상대로 영업하며 그는 재기를 꿈꿨다. 그런데도 한국시장의 벽은 높았고 본사는 2003년 2월 지사 철수를 결정했다. 잦은 이직으로 지쳐버린 김씨는 ‘이번엔 내 사업을 하자’고 결심해 휴대전화 충전기 유통업에 뛰어들었다. 영업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문제는 자금과 생산력이 없다는 거였다. 1년 6개월간 밤낮으로 뛰어다녔지만 이익이 나지 않았다. 회사를 정리한 김씨는 공인중개사 자격을 따 사무실을 열었다. 이번에는 금융위기 탓에 부동산시장이 얼어붙었다.
고사 직전의 상황으로 몰렸던 김씨는 지난 10월22일 신문을 읽던 중 단신기사에 눈길을 멈췄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가 퇴직 전문인력이 국외 진출한 중소기업에서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내용이었다. 외국계 기업에서 20년간 익힌 영업 실력을 되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찾아왔다고 그는 믿었다. 영어를 손에서 놓지 않은 덕에 코트라의 1차 심사도 무사히 통과했다. 마침내 김씨는 지난 17일 취업박람회에서 현장 면접을 거쳐 물류업체인 에어콘테이너로지스틱스에 새해 1월3일부터 출근하게 됐다. 그는 “국외 새 시장과 비즈니스를 개발하는 업무를 맡는다”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열정을 다 쏟아부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1980∼90년대 대기업이나 외국계 기업에서 국외 현장 경험을 쌓은 40~50대가 최근 중소기업 국외 진출의 ‘길잡이’로 나설 수 있게 됐다. 코트라가 국내에서 일자리를 찾기 힘든 퇴직자와 국외 업무 경험이 있는 인력을 구하기 힘든 중소기업이 손을 잡도록 다리를 놓은 덕분이다. 정부의 전문인력 채용장려금 90만원을 포함해 최저임금은 월 250만원으로 제시됐다. 김태현 코트라 해외투자지원단 과장은 “외국 현지 경험이 많은 인력을 충원하기 어렵다는 국외 진출 기업의 목소리가 높아 사업을 계획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산업인력공단도 누리집 월드잡(www.worldjob.or.kr)에서 국외 취업을 수시로 소개한다. 전력측정기기 전문업체인 서창전기통신의 윤계웅 회장은 “중소기업들은 전문인력을 채용하기도, 교육하기도 어려워서 국외에 진출했다가 손해를 많이 본다”며 “경험이 풍부한 인재를 많이 만나며 시행착오를 크게 줄일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삼성 출신인 김효열(56)씨도 김영근씨처럼 코트라의 지원을 받아 최근 국외 법인장으로 재취업했다. 1994년 3월 베트남으로 처음 떠난 그는, 그곳의 언어와 문화를 익히며 베트남 전문가로 성장했다. 이후 베트남에서 7년간 생활하며 현지의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했다. 그 때문에 삼성에서 퇴직한 뒤에는 국내 봉제업체와 버스업체의 베트남 법인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이번에 또 재취업에 성공해 새해부터는 베트남 골프휴양지의 법인장을 맡는다. 김씨는 “한국 사회가 젊어져서 국내에서 일자리를 찾기가 어렵고, 국외 진출 노하우를 중소기업에 전수하는 보람도 커서 계속 베트남에서 일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에서 키운 실력은 국제 비정부기구(NGO)에서 빛을 내기도 한다. 금융기관에서 25년간 일해온 유일남(58)씨는 지난 2000년 월급을 3분의 1로 줄여 국제구호개발기구인 월드비전 계약직으로 입사했다. 월드비전을 꾸준히 후원해온 그는 더 늦기 전에 보람 있고,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계약직 생활은 고단했다. 나이가 많다고 봐주는 것도 없었다. 안내문을 봉투에 넣어 풀로 붙이고, 성금으로 들어온 동전을 분류하고, 국외 결연자를 모집하려고 아는 사람들에게 하루종일 전화를 돌렸다. 유씨는 “그만둘까 망설일 때도 있었지만, 되돌아보면 조직과 내가 서로 마음을 맞추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2003년부터는 월드비전의 안살림을 운영하는 경영지원본부장이 됐다. 그는 “지구촌에 죽어가는 아이를 살리는 일을 하는 게 행복하다”며 “미리 퇴직을 준비하면 남은 ‘하프타임’이 훨씬 보람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과 신학을 공부한 유씨는 3년 뒤 월드비전에서 은퇴하면 해외 선교사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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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퇴직전문인력 해외투자기업 채용박람회’가 열리고 있다. 코트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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