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오후 서울 대치동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SETEC)에서 열린 ‘벤처 7일 장터’ 행사에서 멘토로 나선 조현정 벤처기업협회 부회장(비트컴퓨터 회장, 왼쪽 둘째)이 신생 벤처 창업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벤처기업협회는 매달 첫째 주 수요일마다 이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벤처기업협회 제공
‘장터’ 열어 성공경험 멘토링
‘정부주도 육성엔 한계’ 반성
자발적 협력 네트워크 구축
‘정부주도 육성엔 한계’ 반성
자발적 협력 네트워크 구축
미국의 칼럼니스트 켄 올레타가 펴낸 책 <구글드-우리가 알던 세상의 종말>을 보면, 실리콘 밸리에서 ‘코치’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빌 캠벨이 등장한다. 그는 코닥·애플 등의 마케팅 간부를 지내고 소프트웨어 업체인 인튜잇(Intuit)의 최고경영자 등을 지낸 ‘경영 전문가’다. 구글의 공동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도 사업 초기 투자와 조직관리에 헤맬 때, ‘캠벨 코치’를 찾아가 사업 조언을 구한 바 있다. 넷스케이프를 만든 마크 앤드리슨과 애플의 스티브 잡스 등 실리콘 밸리 벤처업계의 신화와 같은 창업가의 멘토로도 알려진 빌 캠벨은 실리콘 밸리가 성공할 수 있었던 밑거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처럼 벤처 창업자를 돕는 한국판 ‘캠벨 코치’를 만날 수 있는 자리가 처음으로 마련됐다. 지난 7일 오후 벤처기업협회가 중소기업청과 함께 서울 대치동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SETEC)에서 연 ‘벤처 7일 장터’가 그것이다. 벤처기업으로 출발해 현재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만들고 있는 성공한 선배 벤처 창업가가 창업을 준비하는 학생과 신생 벤처 창업자 등과 만나 자유롭게 조언·의견을 나누고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는 행사다. 이날 첫 행사에는 모두 80여명이 모였으며, 벤처기업협회는 앞으로 행사를 정례화해 창업을 확산하고 각종 지원사업과 연계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처럼 벤처업계가 자발적인 협력 네트워크 구축에 나선 데에는 1998년 외환위기 뒤 급작스럽게 일었다 가라앉은 벤처 열기에 대한 반성이 깔려 있다. 그동안 정부 주도로 자금 지원 등을 중심으로 진행해 온 벤처기업 육성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정보기술(IT)과 경영의 성공 경험을 창업가 사이에서 공유하는 점이 중요하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스마트폰 열풍 등으로 나타나고 있는 정보기술 시장의 변화도 이같은 흐름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 7일 중소기업청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1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린 국내 벤처기업은 전년 대비 약 20%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5년 전과 견줘 기업 수와 매출액은 3배 이상 늘어났으며, 평균 매출액도 11%가 늘어 코스닥 시장 평균 매출 증가율(5.4%)을 웃도는 등 제2의 벤처 창업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에 대해 창업가들과 경영 전문가들은 창업자 스스로 지속 가능한 연구개발(R&D)을 가능하도록 만드는 멘토링 문화를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날 ‘벤처 7일 장터’ 행사에 앞서 진행한 벤처기업 전략토론회에서 황철주 벤처기업협회장(주성엔지니어링 대표)은 “과거 국내 벤처기업이 내놓은 엠피스리(MP3)가 소니의 워크맨을 밀어낸 적이 있고, 일본의 휴대전화 기술을 앞지른 것도 우리나라의 벤처기업이었다”며 “그러나 다시 대기업 중심으로 단순히 ‘도요타를 벤치마킹하자’는 식의 모방 전략은 100년이 지나더라도 빌 게이츠·스티브 잡스 같은 인물을 만들 수 없다”고 강조했다.
벤처 창업가가 창업 초기 뒤에 겪는 경영 실수·위기를 말하는 이른바 ‘죽음의 늪’을 넘어설 수 있도록 업계 차원에서 경영 훈련을 전수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중소기업학회장인 이장우 경북대 교수(경영학)는 “벤처 창업도 기술·마케팅 모두를 성공해야 하지만, 경영의 영역을 간과하는 창업자가 많다”며 “처음부터 성공하는 벤처기업의 사례를 보면 초창기부터 경영의 유전자(DNA)를 구축하는 데 노력한 곳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배종태 카이스트 교수(벤처경영·기술경영)도 “모든 시장이 성장하다 고꾸라지기 때문에 수명이 다한 제품을 만드는 벤처 창업가의 경험 위에 새로운 창업가의 아이디어를 얹을 수 있는 ‘오픈 이노베이션’이 가능한 문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벤처기업협회는 앞으로 매달 첫째 주 수요일마다 서울 대치동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에서 벤처 7일 장터 행사를 열 계획이다. 첫째 주를 제외한 매주 수요일에는 온라인·오프라인 등에서 소규모로 대화를 나누고 한 달에 한 번씩 정식으로 멘토링 자리를 열겠다는 것이다. 멘토 역할을 맡는 선배 창업가 수도 앞으로 200명 안팎까지 늘리고 창업과 기술·특허·금융·홍보 전문가 등까지 멘토링 분야도 넓힐 계획이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매출 1000억 이상 벤처기업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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